내각 붕괴 막기 위해 마크롱 업적 포기
15일 예고된 불신임 투표 철회 여부 주목
자진사퇴 후 나흘 만에 복귀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14일(현지시간) 결국 ‘연금개혁 중단’ 카드를 꺼냈다. 내각이 또다시 붕괴되는 걸 막기 위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역점 사업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그만큼 정권이 수세에 몰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가부채 감축을 위한 긴축 예산안 통과를 위해 만성 재정적자의 주범인 연금 개혁을 포기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8년 집권에도 불구하고 국내 성과가 거의 없는 마크롱 대통령이 생존을 위해 유일한 업적을 희생했다”고 보도했다.
AFP통신과 로이터 등에 따르면 르코르뉘 총리는 이날 이날 정책연설에서 “2023년 시작한 연금 개혁을 다음 대선 이후로 연기할 것을 의회에 제안하겠다”며 “현재부터 2028년 1월까지 정년연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2023년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 표결 없이 강행한 연금개혁은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퇴직 연령을 기존 62세에서 매년 3개월씩 늘려 2030년에 64세가 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날 르코르뉘 총리의 발언은 대선이 있는 2027년까지 연금수급개시 연령, 즉 정년 연장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연금개혁이 중단되면 프랑스 정부는 당장 내년에 4억 유로(약 6,630억 원), 2027년에는 18억 유로(약 2조9,860억 원)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재정적자가 더 심각해지는 것이다. 르코르뉘 총리는 그러면서도 국가부채 감소를 목표로 하는 긴축 예산안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대신 “다른 곳에서 아껴서 이 비용을 메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5.8%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2026년에는 4.7%로 낮추는 것이 그의 목표다.
마크롱 ‘통 큰 양보’ 통할까
연금개혁 중단은 마크롱 대통령도 동의한 사안이다. 그는 앞서 10일 좌파 정당 지도자들과 회동에서 연금개혁 양보를 시사했다. 야권의 불신임으로 2년도 안 돼 총리가 다섯 번이나 바뀔 정도로 심각한 정국 불안을 타개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 입장에선 ‘통 큰 양보’를 한 셈이지만 실제 이 카드가 통할지는 15일까지 지켜봐야 한다. 좌우 가리지 않고 조기 총선을 요구해온 야당이 15일 르코르뉘 총리 불신임 투표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간 연금개혁 중단을 강하게 압박해온 사회당은 이날 철회 의사를 밝혔다.
불신임안이 통과돼 르코르뉘 내각마저 붕괴하면 내년도 예산안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게 되는 프랑스 의회는 내년 1월 1일부터 긴급 임시법령으로 비상 예산을 승인해야 한다.
벨기에, 연금개혁 반발해 총파업
긴축재정과 연금개혁은 이웃 나라 벨기에에서도 국민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벨기에 정부는 법정 은퇴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2030년까지 67세로 늘리는 연금개혁을 추진 중이다. 이날 벨기에에선 이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일어나 항공편이 대거 취소되고 지하철과 버스, 트램 운행이 중단됐다. 벨기에의 재정적자는 GDP의 5.5% 수준으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루마니아, 폴란드, 프랑스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