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원장이 10일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을 앞두고 현행 사형제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다만 사형제 폐지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안 위원장은 9일 성명에서 "생명권은 모든 기본권의 전제가 되는 권리"라며 "그런데 사형은 모든 이에게 살인을 금지하면서도 국가가 공익적 목적 달성을 위해 생명권을 부정하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형제가 범죄 억제에 필요하다는 주장도 반박했다. 안 위원장은 "국가의 책무인 범죄 예방은 국민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책 수립과 사회적 기반 조성으로 달성해야 한다"며 "범죄 예방을 사형제 유지로 달성하려는 태도는 국가의 책임을 모호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응보의 수단으로서의 사형에 대해서도 "범죄자의 재사회화라는 형벌의 목적을 포기하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판결의 오판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안 위원장은 "인간의 판단은 얼마든지 잘못될 가능성이 있고 2007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판에 의한 사형 집행은 회복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1974년 발생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 반대 시위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대표적 사건으로 당시 8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안 위원장은 끝으로 "유엔 역시 사형제가 살인 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는 조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며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국제사회와 함께 인권 보호의 길을 걸어가길 기대한다"고 제언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는 113개국으로 한국은 1997년 12월 이후 25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는 '사실상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사형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한편 전임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2년 전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을 앞둔 성명에서 "지금이 바로 사형제 폐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적기"라고 좀 더 직접적으로 사형제 폐지를 촉구했다. 인권위 역시 2005년 4월 국회의장에게 사형제 폐지에 대한 의견을 제출했고, 2009년 7월에는 헌법재판소에 사형제 폐지 의견을 전달하는 등 사형제 폐지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