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지연 전략에 소수당 입 틀어 막나... 여야 극단 대치 무대로 전락한 필리버스터

김현종 기자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與 "형식적 남발 제한" 국회법 개정 예고에
국힘 "의회 통째로 들어 먹겠다는 것" 반발
'여야 균형 붕괴' 우려에 여권서도 신중론
"법안 홍보 기회도 걷어차나" 야권 자성론도
김병기(왼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송언석(오른쪽)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정다빈 기자


국회 선진화법의 상징 격이었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여야 극단 대치의 무대로 전락했다. 국민의힘이 쟁점 법안뿐 아니라 69개 민생 법안까지 싸잡아 필리버스터를 단행하겠다고 어깃장을 놓자, 더불어민주당은 아예 필리버스터를 제한하겠다고 극약 처방에 나섰다. 필리버스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민생 발목 잡기 논란'을 자초한 국민의힘과 의석수를 앞세워 소수당의 발언권까지 빼앗겠다는 민주당의 강대강 충돌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여야 모두 강경 일변도로 나갈 경우 각각 '입법 독주' '민생 발목'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민주당 내부에선 "소수 정당의 입을 틀어막아선 안된다"며 필버 개정안에 신중론도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말까지 필버 하겠다는 국힘



필버 논란에 기름을 부은 건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였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 "형식적 필리버스터 남발을 끊어내겠다"며 국회법 개정을 예고했다. 최근 국민의힘이 민생법안까지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들자, 룰 자체를 뜯어고치겠다고 경고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30일에도 "야당의 발목 잡기(한정애 정책위의장)" "국민 피해 방치한 채 정치적 이익만 쫓는 행태(문진석 원내수석부대표)" 등이라고 야당의 묻지마 필버에 대한 성토를 쏟아냈다.

이러한 전방위 압박은 국민의힘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뒤 국민의힘은 8월 4일 방송법을 시작으로 이달 29일까지 총 9개 법안에 대해 9박 10일간 필리버스터를 단행하며 초강경 지연 전략을 이어 왔다. 다수당이 24시간 만에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보여주기식 발목 잡기'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으나, 국민의힘은 "입법 독주 행태를 알릴 기회"라며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는 10월 2일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본회의에서는 여야 합의 민생법안 69개 전체에 대해 '69박 70일 필리버스터'를 예고하고 있다. 소모적인 필버 국면을 연말까지 끌고 가겠다고 버티자, 민주당 내에서도 강경론이 불붙은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4박 5일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이 끝난 뒤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지도부 속도 조절?



필버 제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여권 내 우려도 적지 않다. 소수당의 저항 수단인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면 야당의 '민주당 입법 독재' 프레임을 강화할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당장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의회를 통째로 들어먹고 일당 독재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격한 비판을 쏟아냈다. 가까스로 유지되던 여야 균형이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민주당 지도부도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단 경고성에 가깝다. 당장 개정안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자성론'이 싹트고 있다. 처리가 시급한 민생 법안까지 볼모로 잡아 정쟁에 몰두하는 모양새가 부담스러운 데다가, 당의 입법 성과 홍보 기회마저 스스로 걷어차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전날 민주당이 기습 처리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법은 기후위기특별위원회 논의 단계에서 국민의힘 역시 적극 지원했고, '필리버스터에서 제외하자'는 당내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국민의힘이 정색하고 공세를 펴지 못하는 배경이다. 다만 원내 지도부는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게 확고한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정치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