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밥솥' 같은 한국 교육…가난 탈출 원동력 됐지만 이젠 '그림자'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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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년, K도약 리포트]
연간 사교육비 29조 원…전년보다 7%↑
'4세 고시'로 대표되는 조기 사교육 늘고
의대 입학 등 노리는 n수생 증가 등 영향
사교육비 부담→저출생으로 이어져
서울 서초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입시 준비 홍보물이 게시돼 있다. 뉴스1


"한국 교육은 압력밥솥 같다."
아만다 리플리,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중


‘압력밥솥’이라는 표현에는 우리 교육의 과거와 현재, 강점과 약점이 모두 담겨 있다. ‘명문대 입학’이라는 바늘구멍 같은 목표 앞에 아이들을 줄 세워 놓고, 엄청난 학습 압력을 가하는 교실. 극한경쟁과 이를 뒷받침해준 교육열은 1945년 광복 후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생 등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난제의 뿌리가 교육이라는 것이다.

"사교육비 1% 증가 땐 합계출산율 0.2% 안팎 감소"



해마다 늘어나는 사교육비 부담은 우리 교육의 짙은 그림자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생이 쓴 사교육비는 역대 최대인 29조2,000억 원이었다. 2007년 이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액수다. 학령인구 감소 탓에 초∙중∙고 학생 수는 1년 새 8만 명(2023년 521만 명→2024년 513만 명) 줄었는데 부모가 쓴 사교육비 총액은 오히려 7.7%(2조1,000억 원) 늘었다.

아이들이 학원을 찾는 시점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기저귀도 떼지 않고 본다"는 '4세 고시'(유아 영어학원 레벨 테스트)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조기 사교육이 흔하다.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6세 미만 전체 유아의 사교육 참여율은 47.6%였으며, 월평균 33만2,000원을 썼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를 두고 “저출생이 장기화하면서 ‘내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n수생 증가도 사교육비 폭증의 원인이다. 의대를 정점에 둔 '대입 피라미드'가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취업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몇 년 더 공부해서라도 '대학 간판'을 얻으려는 심리가 수험생 사이에서 공고해졌다. 이 탓에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응시생 중 n수생(졸업생) 비율은 23.2%였는데 2025학년도에는 31.0%로 늘었다.

지난해 8월 서울 한 학원가에 n수생을 겨냥한 홍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사교육비 증가는 부모 지갑에서 돈이 조금 더 나가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저출생의 핵심 원인이 됐다. 자녀 1명당 드는 교육비가 워낙 많다 보니 둘째를 낳지 않거나 아예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층이 많다. 실제 김태훈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가 올해 초 발표한 '사교육 지출 증가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1% 증가하면 다음 해 합계출산율은 약 0.192~0.26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부모 세대가 자녀 사교육에 돈을 많이 쓰면 그만큼 노후를 버틸 자산이 줄어드는 것이기에 두고두고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대학 진학에 지나치게 목을 매는 문화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생들에게 일찌감치 직업 교육을 시킨 뒤 취업하도록 하는 독일, 싱가포르 등과 달리 우리는 학생 대부분이 대입에만 몰두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대졸자는 넘치고 직업 전문성을 갖춘 고졸 인력은 부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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