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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나마디 조엘진. 열아홉 살 스프린터의 이름이 지난 일주일 사이 국내 언론에서 자주 호명됐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열린 라인-루르 하계 유니버시아드 남자 400m 계주 결선에서 한국 대표팀의 두 번째 주자로 나서 금메달을 딴 덕이다. 100m 한국신기록(10초07) 보유자인 김국영이 "10초 벽을 깰 재목"으로 지목했던 육상 영재. 그와 동료들은 이제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출전을 바라본다.
조엘진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다.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의 피를 받았다. 육상 멀리뛰기 선수였던 부친의 DNA를 물려받은 데다 성실함까지 갖춰 고교생 때부터 나가는 대회마다 금메달을 수집했다. 어머니는 혼혈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종종 맞닥뜨린 아들에게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고루 받은 너의 장점을 잊지 말라"며 응원해줬다.
조엘진과 한국 남자 400m 계주 대표팀이 거둔 성취는 9년 전 일본 대표팀이 만들어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은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남자 육상 400m 계주에서 미국을 꺾고, 우사인 볼트가 버틴 자메이카에 이어 은메달을 따냈다. 당시 마지막 주자였던 케임브리지 아스카는 조엘진과 묘하게 겹친다. 자메이카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케임브리지는 두 살 때부터 일본에서 자랐고, 중학교 때 육상을 시작해 일본 단거리의 간판으로 성장했다.
일본 스포츠가 최근 퀀텀점프(대도약)할 수 있었던 건 케임브리지 같은 '하푸(half·일본 국적 혼혈인의 일본식 표현)'의 힘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 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에서 활약하는 하치무라 루이, US오픈 등 메이저 대회에서 4번 우승한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 미국 프로야구(MLB)를 주름잡은 다르빗슈 유 등이 대표적인 '하푸'다. 일본 전체 인구의 2%가 혼혈인데 이들의 재능을 사회가 잘 발견해 키워내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조엘진으로 대표되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미래이자 희망이다. 지난해 전체 초·중·고교생 중 다문화 학생의 비율은 3.8%(19만3,814명)로 역대 최고치였는데, 앞으로도 매년 고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다문화 청년들이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 어떤 분야에서든 실력을 뽐낼 수 있어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한국은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조엘진의 낭보가 전해지던 날, 다문화가정 출신 병사 A일병이 부대원들로부터 따돌림당하다 생활관 2층에서 뛰어내렸다는 뉴스도 보도됐다. 중국인 아버지와 북한이탈주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모친의 국적을 따른 뒤 육군에 입대했는데 그의 배경을 알아챈 일부 부대원이 '짱깨', '짭코리안' 등으로 부르며 조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문화의 힘을 믿으며 그들을 품는 사회와 멸시와 조롱을 멈추지 않는 사회. 어느 쪽의 미래가 더 밝은지는 자명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