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리베이트만 없애도 국방예산을 20% 줄일 수 있다.”
2009년 9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호통쳤다. 무기중개상과 연루된 방산비리가 속속 드러날 때였다. 부조리를 상징하는 방위산업은 최우선 척결 대상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방산비리는 이적행위"라고 몰아세웠다. 2014년 출범한 민군합동수사단은 77명을 기소했다. 적발된 사업비리가 1조 원대에 달했다. 검색창에 ‘방산’을 입력하면 연관어로 ‘비리’가 따라붙었다. 삼성탈레스와 삼성테크윈이 한화에 매각됐다. 1등 기업 삼성도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제도와 조직을 바꾸고 검증과 투명성을 강화해 브로커의 농간을 차단했다. 기술자립과 민간 주도에 힘을 실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 들어 수출에 속도가 붙었다. K2 전차와 K9 자주포가 선봉에 섰다. 1971년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하는 된서리에 맞서 자주국방을 내걸고 시작한 번개사업은 고작 소총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이후 포와 미사일, 전차, 전투기, 잠수함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룬 수십 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K팝, K푸드, K드라마를 넘어 K방산이 각광받는 시대다.
□ 이재명 대통령은 ‘글로벌 방위산업 4대 강국’을 약속했다. 세계 무기시장에서 중국 독일 영국을 넘어서겠다는 야심 찬 목표다. 아울러 방산을 미래 먹거리, 신성장 동력, 국부 증진의 견인차라고 치켜세웠다. 방산수출 컨트롤타워를 신설하고 대통령 주재 전략회의를 정례화할 방침이다. 방산주는 주식시장에서 연일 강세다. 최근에는 K2 전차의 폴란드 수출 호재까지 겹쳤다. 단일 무기체계 역대 최대인 9조 원 규모의 잭팟을 터뜨렸다.
□ 7월 8일은 제1회 방위산업의 날이다. 거북선이 임진왜란에 처음 출전해 승전보를 올린 1592년의 그날을 기념했다. 선조들이 입증한 기술력의 자부심을 계승하는 의미가 담겼다. K방산이 거둔 눈부신 성과치고는 축배를 너무 늦게 들었다. 비리로 얼룩진 과거의 충격과 실망감이 워낙 컸던 탓이다. 첫 기념일이 자화자찬에 그칠지, 방산의 미래를 고민하는 겸허한 자리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