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만만한가 [뉴스룸에서]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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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넉 달, 불확실성에 불안 가중
尹 예측 불허... 李 기대에 못 미쳐
꾸물대는 헌재, 더는 휘둘리지 말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29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왼쪽)와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벌써 넉 달이 지났다. 난데없는 계엄 사태로 무너진 일상을 부여잡고 버티며 꽤 오래 참았다. 뭔가 달라질 때도 됐다. 이쯤이면 수긍할 만한 상황으로 바뀌어야 한다. 혹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꿈틀대야 정상이다. 하지만 둘 다 아니다. 충격은 여전하고 회복은 더디다. 불확실성이 걷히지 않아 짜증과 불만이 쌓인다. 이런 식이면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대한민국에 사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순리대로 수습하면 된다. 헌정질서를 유린한 책임을 묻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세력의 준동을 막고, 새 리더십에 열망을 담아 갈등을 줄여가는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고 싶지만 그랬다간 파국이다. 수틀린다고 저항권을 앞세워 선동하면 무도한 저들과 다를 바 없다. 잘못을 바로잡는 건 법과 상식에 맡겨야 한다. 절차에 따라 단죄하고 정치가 부응해 원래대로 되돌리는 게 먼저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상하다. 헌법재판소가 기약 없이 꾸물댄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최우선”이라던 약속은 깨졌다. 말을 뒤집고는 입을 닫았다. 온갖 억측이 나돌면서 지켜보는 인내심이 바닥날 지경이다. 여론까지 살피는 정치적 사법기관이라지만 실상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줄타기로 비친다. 한덕수 총리 기각 결정에서 드러났다. 심각할 정도로 제각각 판단이 달랐다. 아예 사법적 정치기관으로 불러야 할 판이다. 오죽하면 물러날 재판관 임기까지 따져가며 선고를 재촉해야 하나. 신뢰를 잃은 헌재는 부끄러운 역사의 공범으로 남을 뿐이다.

다음 과정도 만만치 않다. 무장병력을 동원해 국회와 선관위를 장악하려던 친위 쿠데타의 주범은 요지부동이다. 아무런 반성도 승복 선언도 없다. 움켜쥔 권력의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객기를 부리다 기어코 나라를 쪼갰다. 졸지에 떠안은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가늠이 안 된다. 예측불허에 뒤끝 작렬이라 더 문제다. 여차하면 관저 밖으로 나와 애국자로 행세하며 극성 지지층을 부추길지 모른다.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간 걷잡을 수 없는 광란의 시간이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 28일 벚꽃이 활짝 펴 있다. 헌재가 예상 외로 꾸물대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는 4월로 넘어갔다. 뉴스1


꽉 막힌 현실의 탈출구가 절실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유력한 대안이지만 아직은 미심쩍다. 공직선거법 2심 무죄 선고로는 충분치 않다. 대세론을 굳힐수록 유권자의 선택 기준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볼썽사나운 진영 대결이 어떻게 극단의 분열로 치닫는지 똑똑히 봐왔다. 윤 대통령과 맞서던 방식으론 어림없다. “몸조심하라”는 협박으로 상대를 누를 수 있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눈치 없는 거대 야당은 줄탄핵과 쌍탄핵을 넘어 국무위원 연쇄탄핵으로 공포 마케팅에 가세했다. 지지자들 외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힘자랑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단계마다 국민을 얕보는 시험대가 즐비하다. 탄핵 정국의 혼란을 끝내려면 무조건 넘어서야 한다. 헌재의 속도가 민심을 따라가지 못해 정의가 지연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또다시 삶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하다. 조기 대선을 노리는 선두주자는 생각이 다른 이들의 지적에 아랑곳없다. 그사이 마음 급한 정치권은 폭발 직전이다. 마은혁 후보자 임명 문제를 놓고 죽기살기로 치받고 있다. 심리적 내전상태가 한층 격화됐다. 헌재가 결정을 내려야 꼬인 실타래가 하나씩 풀린다. 더는 애태우지 말라. 얼마나 큰 역풍을 맞아야 정신차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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