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다음 리더십 [뉴스룸에서]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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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대결 조장해온 尹 리더십 이제 끝
실패한 보수... 극우에 휩쓸리면 미래 없어
상식의 리더십 절실... 李 때리기 넘어서야
국민의힘 의원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를 찾아 사무처장을 면담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집결한 여당 의원 36명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결론을 정해놓고 돌진하고 있어 부당하다면서 헌재의 편향성과 불공정에 대해 강력 항의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은 끝났다. 곧 나올 탄핵 심판 결과와 상관없는 일이다. 왜곡된 신념에 사로잡혀 극단적 대결을 추종하는 지도자를 더는 인정하기 어렵다. 불법적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려 궤변을 쏟아냈다. 혐오와 선동을 조장하며 갈등을 부추겼다. 나라를 석 달째 혼돈으로 몰아넣고서도 뻔뻔하다. 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직무정지 이후 대통령의 신봉자가 늘어나는 기현상에 들떠 있다면 오산이다.

“방향이 같아야 좌우 날개가 힘을 합쳐 날아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를 둘로 갈랐다. 추락하는 줄도 모르고 왼쪽 날개를 부러뜨리려 했다. 삐뚤어진 소명의식으로 타협을 거부하다 파국으로 치달았다. 남은 오른쪽 날개는 몸통에 기생하며 허공을 휘젓고 있다. 윤석열을 지키자는 거리의 구호에 취했다.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을 밀쳐내는 반감에 기대면 다시 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보수의 실험은 실패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키웠다. 국민의힘은 그를 간판으로 내세웠다. 대선 승리를 위해 편한 길을 택했다. 보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몰락하고 2020년 총선 참패로 궤멸된 상황이었다. 정권을 잡고 나자 본색을 드러낸 권력은 반복된 경고를 뭉갰다. 집권여당은 맥없이 끌려가며 공범이 됐다. 급기야 패거리 정당으로 전락할 지경이다. 방탄 오명에도 개의치 않고 의원들이 한남동 관저와 헌법재판소로 몰려다녔다.

윤 대통령 주변을 기웃거릴 때가 아니다. 계엄과 탄핵으로 불안정한 정국에 훨씬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그들 편에 서겠다는 보수를 찾아볼 수 없다. 의례적인 환골탈태라는 말조차 듣기 어렵다. 여야 지지율이 엇비슷하고 아스팔트 우파의 함성이 커지자 슬쩍 묻어갈 셈이다. 계엄이 잘못이지만 탄핵은 반대한다며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이번에도 윤 대통령 뒤에 숨어 훗날을 도모할 생각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된 탄핵 심판 10차 변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구속된 대통령을 숙주 삼아 극우가 몸집을 키웠다. 서부지법 난입 폭력 사태와 부정선거 음모론은 세를 과시하려는 무력시위나 다름없다. 못마땅한 세상을 향해 분풀이가 한창이다. 냉정하게 선을 긋지 못하면 여당 지지율은 한낱 거품에 그칠 수 있다. 과열된 주장에 휩쓸리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려는 중도층을 외면하는 처사다. 무시하자니 108석은 너무 많고, 믿고 가기엔 너무 안이하다. 민심을 얻으려는 절박함이 없다.

단죄의 시간 다음은 정치의 시간이다. 그렇다고 '이재명 포비아'를 핑계로 반사이익만 노리는 건 패배주의나 마찬가지다. 여전한 사법 리스크에 각종 말 바꾸기 논란이 더해져 공격할 구석이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똑똑히 봤다. 비전은 뒷전이고 이재명이냐 아니냐를 따지다가 보수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 대표는 안팎의 반발에도 중도 보수로 우클릭하며 어쨌든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변화보다 스크럼을 짜는 데 익숙한 보수는 훈수만 두다가 극우로 밀려날 판이다.

조기 대선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여권 잠룡들이 앞다퉈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온갖 청사진으로 국민을 현혹할지 모른다. 시대착오적인 의리에 발목 잡힌 채로 민생을 외치는 건 난센스다. 누가 먼저 반성하고 성찰하는 용기를 보여줄 것인가에 달렸다. 거창할 것 없다. 윤 대통령이 용도 폐기한 상식의 기준에 부합하면 된다. 보수의 바통을 이어갈 리더십은 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언제까지 비겁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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