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고수익 알바" "숙식 지원" "비자 제공" 같은 문구에 이끌려 캄보디아를 찾았다 감금된 한국인들, 대부분 20~30대 젊은 남성들입니다.
무장 경비원이 지키는 굳게 닫힌 철문 뒤에서 무려 수만 명이 감금, 협박, 그리고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사례가 쏟아지는데 수법은 비슷합니다.
일단 감금되면 다른 피해자를 끌어들여야 하고, 할당량을 못 채우고 도망치면 맞고 전기 고문을 당하고 결국은 살해당했습니다.
[A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JTBC뉴스룸 10월 14일자)]
"(박씨는) 살아 있던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팔뚝이랑 무릎 정강이 얼굴 허리….
아픈 곳은 다 때리는 거 같아요. 거의 검정색이죠, 몸이."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이미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범죄였습니다.
지난 6월에 나온 앰네스티 보고서를 보면 "캄보디아 안에 이런 '사기 범죄 단지'가 53곳이나 있다" "대대적인 국가 실패다",
2023년 6월엔 이미 "중국, 인도네시아, 일본인과 함께 한국인이 갇혀 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앙코르 와트로 유명한, 한때 서양 관광객들의 버킷 리스트였던 캄보디아엔 2010년대 막대한 중국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카지노, 고층 호텔, 고급 리조트가 들어섰죠.
하지만 코로나 19로 관광 단지가 흉물이 되자 이곳에 중국 범죄 조직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온라인 도박, 보이스피싱, 가짜 주식 리딩방 등 전 세계를 향하는 범죄의 메카가 된 겁니다.
수법은 점점 대담해져 길 한 가운데서, 시내 카페에서 사람을 납치하는 경우도 포착됐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일본인 12명이 구출됐고 올해 초엔 미국인 탈출자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표적은 대만, 중국, 태국, 그리고 한국인입니다.
놀랍게도 한국인은 몸값이 가장 비싸서, 이 사기 단지의 최우선 표적으로 꼽힙니다.
이미 5개월 전에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우리 정부에 긴급 대응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입니다.
주변 국가들이 자국민을 구출하느라 사활을 걸고 있지만, 정작 캄보디아는 멈출 의지조차 없습니다.
사실상 가장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역점 사업'이기 때문이죠.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바로 태자그룹의 천즈 회장입니다. 오른쪽은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죠.
겉으로는 장학사업을 펼치는 성공한 사업가지만, 실상은 정권의 비호를 받는 국제 범죄자입니다.
대부분 비상장이다 보니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천즈가 운영 중인 카지노와 온라인 도박, 그리고 범죄단지 수익은 캄보디아 GDP의 10%에 달한다는 추정도 나옵니다.
미국 국무부 자료인데요, 캄보디아의 일부 고위공무원들이 범죄 단지의 소유자로 등록돼 있습니다.
단속이 제대로 될 리가 없죠. 모두 한 통 속인 셈입니다.
[B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JTBC뉴스룸 10월 14일자)]
"현지 경찰서장한테 3000달러에서 5000달러 주면 그냥 없던 사건으로 하고 풀어준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2023년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중국 영화 '노모어베츠'가 나왔는데, 캄보디아 정부가 나서 상영 중단을 요청합니다.
[영화 '노모어베츠' 중]
"주식투자, 비트코인 채굴, 온라인 게임·쇼핑·도박…."
"나가고 싶습니다. 나가면 자유로워질 것 같아?"
캄보디아에서 성공한 이 '비즈니스 모델'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남미, 아프리카, 중동, 유럽으로도 수출되면서 마피아들과 손잡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미국 재무부는 캄보디아에서 이들 단지를 건설하고 대리 운영 중인 태자그룹을 '초국가적 범죄조직'으로 규정했습니다.
천즈 회장을 기소하고 소유 비트코인을 압류하기로 했습니다. 21조원 규모로 사상 최대 규모의 압류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영국 역시 이들 사업체와 부동산을 즉각 동결하고 자체 금융 체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했습니다.
하지만 범죄 사기 단체들은 빠르게 짐을 챙기고, 우회로를 찾고 있습니다.
한국은 논란이 된 이후 오늘 처음으로 현지에 수사 인력을 파견합니다.
윤석열 정부 당시 국제 수사를 담당하는 인력이 대폭 줄었는데, 이미 캄보디아 현지의 협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그 사이 국민 구제는 교민들이 알음알음 자비를 들여 맡아왔습니다.
이제는 실상을 잘 몰랐다며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찾는 일도,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자국민을 팔아넘기는 일도 멈추기를 바랍니다.
JTBC 백민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