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번엔 또다른 피해자를 통해 취재한 또다른 실상입니다. 한 20대 남성이 '인터넷 구인 공고'를 보고 캄보디아로 갔습니다. 한국인 고객을 상대하는 상담원을 뽑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한 뒤, 범죄 단지로 끌려갔고 보이스피싱 대본이 주어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들고 나온 '보이스피싱 대본'과, 그 안에서 겪은 일들을 JTBC에 밝혔습니다.
양정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양정진 기자]
지난 6월 인터넷서 발견한 구인 공고가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김모 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 캄보디아 현지에서 어떤 업체를 운영하는데 한국인 대상으로 하니까 한국어로 대화하면서 상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 모집을 했다.]
김씨가 주저하자 근로계약서와, 급여이체 내역, 호텔급 숙소 사진 등을 보여줬습니다.
[김모 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 기본금 250만원이었고 추가 근무나 인센티브에 따라 다르다고 했는데 일단 어느 정도 와닿는 금액이라서 더 의심을 안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김씨가 끌려간 곳은 범죄단지 웬치였습니다.
[김모 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 '이 일이 보이스피싱 일이다'라고 말하고 '근로계약서를 써라' 안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일단 알겠다고 하고…]
조선족 조직원은 7일에 걸쳐 단계별로 사기를 치는 방법이 상세하게 적힌 보이스피싱 대본부터 건넸습니다.
교도소 교정공무원을 사칭해 물품을 대량 구매할 것처럼 속여 돈을 뜯어내는 내용이었습니다.
김씨는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이 대본을 몰래 빼돌렸습니다.
[김모 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 걔네 대본이랑 사기 치려고 지금 계획하는 단계의 가게들을 몇 개 적어가지고 제 메일로 몰래 보냈어요.]
이미 한국인 20여명이 피싱 범죄에 동원되고 있었습니다.
김씨는 범죄자가 되는 게 두려워 감금 이틀만에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김모 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 밧줄을 묶고 (창문으로) 내려가는데 이불이 조금 질이 안 좋아서 내려가다가 이제 뜯어지더라고요.]
다행히 감금 4일만에 현지 경찰이 들이닥쳐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앵커]
감금된 피해자들은 우리 대사관에 구조 요청을 했다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대사관 말고 캄보디아 경찰에 신고하라는 답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현지 경찰과 닿아도 비협조적이거나, 뒷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피해자들은 말했습니다.
정해성 기자입니다.
[정해성 기자]
감시가 느슨해지는 새벽이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휴대전화 통신이 다시 연결되자 바로 가족에게 감금된 위치를 보냈습니다.
현지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모 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 대사관이 해줄 수 있는 건 현지 경찰 연락처 주고. 본인이 신고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대사관은 신고보다는 스스로 탈출하는 게 낫다는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김모 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 웬만해서는 혼자 알아서 자력으로 탈출하는 게 낫다고. 아무래도 캄보디아 현지 경찰이 협력을 잘 안 해주는 거로…]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에선 "사법 권한이 없어 현장에 출동해 수사와 구출 활동을 할 수 없다"고 공지를 띄웠습니다.
또 "캄보디아 경찰에 구조를 요청하려면 구조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 등을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현지 경찰은 김씨를 구출했지만 곧바로 경찰서에 구금한 채 한 달 가까이 조사를 이어갔습니다.
당시 사진을 보니 상황은 열악했습니다.
맨바닥에서 비닐을 깔고 잤고, 빗물을 모아 몸을 씻어야 했습니다.
[김모 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 (구금된 한국인이) '현지 경찰서장한테 3000달러에서 5000달러 주면 그냥 없던 사건으로 하고 풀어준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김씨는 300달러와 150달러씩, 우리 돈 65만원을 건넨 뒤에야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캄보디아에서 오랫동안 주재원으로 근무한 한 경찰관은 JTBC에 "현지 경찰이 뇌물을 요구한다는 건 많이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범죄 조직과 경찰의 유착이 심각해 범죄자들이 활동하기 쉬운 환경"이라 지적했습니다.
[화면출처 Amnesty International]
[영상취재 박대권 김대호 이현일 영상편집 김지훈 영상디자인 최석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