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때부터 불법 알았다면 '어쩔 수 없이 강요' 인정 안해
(서울=뉴스1) 신윤하 유채연 기자 = 캄보디아에서 범행에 가담한 이들이 현지 범죄조직으로부터 감금·협박 등을 당한 정황이 확인돼도 국내 법원에서 대부분 중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국내로 대거 송환된 이들 또한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뉴스1이 캄보디아에서 감금·협박 등을 당하며 범죄 행위를 한 한국인들과 관련한 최근 1년간의 1심 판결문 5건을 분석한 결과, 피고인 7명은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범죄 조직에서 맡은 역할이 중책일수록, 피해 규모가 클수록 선고 형량은 높았다. 징역형은 1년 2개월부터 5년까지 다양했으며, 한 피고인에 대해서는 약 2억 원에 달하는 범죄수익에 대해 추징이 선고되기도 했다. 주목할 것은 피고인들이 캄보디아 현지에서 감금이나 폭행을 당하며 생활을 통제당했어도 중형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주식 리딩방 사기를 위해 캄보디아로 출국한 후 약 5개월간 매니저·바람잡이 역할을 한 3명의 피고인은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정해진 근무 시간 동안 유튜브 등을 시청해서는 안 되고, 전기봉을 든 조직원의 감시하에서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대전지법은 이들에게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범행의 피해자가 총 33명이고 합계 피해액이 37억 원에 달했다는 점을 불리한 점으로 판단했다.
피고인들은 폭행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범행에 일조했다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다른 조직원들로부터 폭행·협박을 당해 범행을 중간에 그만두는 것에 장애가 있었단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더라도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범죄조직의 실체를 몰랐다"는 변명도 법정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범죄조직의 총책이나 중간책임자 등이 아니라 일선 상담원이었더라도 범행에 가담하는 과정에서 불법적 일임을 알 수밖에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데이팅 앱 등으로 '로맨스스캠' 콜센터 상담직원으로 일한 피고인도 "범죄 실체를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울산지법 재판부는 지난 1월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중국 조직원들이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한국어 메시지는 사건 범행의 핵심적 부분으로서, 범죄단체의 실체에 관해 알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가짜 투자회사의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59명의 피해자로부터 총 47억여원을 편취한 피고인은 "조직원들에 의해 감금·겁박 당해 범행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징역 4년과 610만 원의 추징 선고를 피할 수 없었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은 "범행의 불법성을 대략 인식했음에도 캄보디아로 출국했고 입국 직후 구체적 내용을 인지하고도 계속해 범행에 가담했다"며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범행 경위에 관해 '100% 억지로 일한다고 말할 수 없고 결국 큰돈을 벌기 위해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지적했다.
감금과 협박 등 '강요된 행위'에 대한 법원의 기준도 엄격하다. 법원은 대체로 조직원이 출입을 통제하거나 일정 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정도로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사회와 완전히 차단되는 감금 상황이 아닌 이상, 피고인들이 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범죄에 가담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주식 리딩방 사기 조직에 법인 계좌를 제공하고 캄보디아 현지에서 해당 계좌를 관리했던 한 피고인은 조직원의 강요에 의해 협조했다고 주장했지만, 지난 4월 징역 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범죄 조직에선 조직원이 동행하면 밖에 나갈 수 있고, 숙소에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 주요하게 고려됐다.
선고를 내린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는 "설령 피고인이 캄보디아 내 숙소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행동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그 정도가 피고인이 이 사건 사기 범행에 나아가지 않고 수사기관에 신고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적법 행위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정예린 법무법인 온조 변호사는 "형법은 강요된 행위, 즉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결국 이러한 강요된 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불법인지 아는 상태에서 캄보디아로 출국했다면 형사 처벌을 받을 것이고, 통장 모집, 리딩방 투자 모집, 수익 분배 등 구체적이고 적극적 범행을 한 것이 확인된다면 그에 따라 중형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부연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3개월 내로 잠깐 갔다가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도망쳐 나오면 보통 징역 1년 6개월에서 2년 6개월이 선고된다"며 "6개월 정도 가담하면 3년 안팎, 팀장급 역할을 하면 5년 안팎, 총책은 15년 정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고 전했다.
단순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출국했는데 현지에서 불법 행위에 가담하게 된 경우는 '강요된 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변호사는 "단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줄 알고 출국했다고 해도 구체적인 사안마다 범죄 행위에 가담할 수 있다는 정황을 알았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고 실형 가능성이 높다"며 "범행 기간, 국내로 올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지 여부, 충분히 나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범죄 행위를 했었는지 여부, 그리고 그 조직 안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어떤 행위를 구체적으로 했는지에 따라 (판결이) 조금 다를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