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에 "조건 수용 안 하면 파괴"…백악관 회담서 윽박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해법으로 영토 양보를 기정사실화해 논란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방영된 폭스뉴스 '선데이 모닝 퓨처스'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관할권을 일부 인정하는 조건의 평화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진행자 마리아 바티로모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차지하지 않고 전쟁을 끝낼 의향이 있어 보였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내 말을 바꿔 "글쎄, 그(푸틴)는 무언가를 가져가려 할 것이다"라며 "내 말은, 그들은 싸웠고 그는 많은 땅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그는 특정 영토를 획득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16일 푸틴 대통령과 2시간 전화 통화 직후 녹화된 방송으로, 푸틴의 설득에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또 돌아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침략국인 러시아가 무력으로 점령한 영토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을 당연시한 데다 우크라이나의 주권이나 국제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기 때문이다.
불과 한 달 전 발언하고도 크게 대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 트루스소셜에서 "우크라이나는 원래 형태로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며 영토 회복을 위한 항전을 지지한 바 있다.
또 이달 초에는 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러시아 본토 타격이 가능한 토마호크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이를 '레드라인'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직후 토마호크 지원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는 지난 17일 백악관에서 열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감지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들의 회담은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푸틴이 요구한 조건을 수용하라고 압박했다.
한 유럽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이 원한다면 당신 나라(우크라이나)를 파괴할 것"이라며 젤렌스키에게 영토 양보를 종용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선 지도를 옆으로 던지며 "이런 지도는 이제 지긋지긋하다"며 역정까지 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푸틴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특별군사작전"이라거나 "러시아 경제는 아주 좋다"는 등 러시아 측 선전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현재 부분 점령 중인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 일부를 포기하는 대가로 도네츠크 전체를 넘겨받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지난 8월 기준 러시아는 도네츠크주의 약 76%를 장악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유럽 동맹국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19일 엑스(X)에서 "우리 중 누구도 젤렌스키에게 영토 양보를 압박해서는 안 된다"며 "유화책은 결코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로 가는 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과 조만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나 회담할 예정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