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입장 모호에 여야 질타…"신규원전, 12차 전기본서 검토"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제기되는 '탈원전 시즌2' 논란에 대해 "나는 탈원전주의자가 아니라 탈탄소주의자"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관련해선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세우는 과정에서 고려하겠다"며 확답을 피했다.
김 장관은 14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지연 국민의힘 의원이 "제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원전 2기 건설은 그대로 추진되는 것이냐"고 질의하자 "현재 11차 전기본이 국가계획이니, 11차 전기본이 효력이 있는 한 그 말이 맞다고 본다"고 답했다.
앞서 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11차 전기본에 따른 원전 건설을 위한 행정행위를 하는 것으로 안다. 국민 공감이 필요하겠지만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 "11차 전기본에 따라 원전을 추가로 짓기로 확정한 것을 감안해 재생에너지와 합리적으로 섞겠다"고 언급하며 원전 건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관 취임 후에는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공론에 부치겠다"고 밝히는 등 신중론으로 선회했다. 이날 국감에서도 김 장관은 "11차 전기본에서 검토했던 안을 포함해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그 부분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요소를 감안해 12차 전기본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조 의원은 "3개월 만에 입장을 뒤집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고, 김 장관은 "11차 전기본은 현재 국가의 공식 전력수급계획으로 존중해야 한다"며 "정권이 바뀌면 에너지 수요에 대한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고 답했다.
김 장관의 모호한 답변에 여야 의원들은 거듭 명확한 답변을 촉구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명이 만료되는 원전에 대한 연장 운전을 할 것인지와 대형 원전 2기 신규 건설에 대해 명확히 답변해 달라"고 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김 장관의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다. 김 의원은 김 장관이 "필요성이 없거나 (유치를) 신청하는 곳이 없으면 추진하지 않을 수 있고 사정에 맞춰야 한다"고 답하자 "원전을 갖고 먹고사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쩌라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윤상현 의원은 "2038년까지 신규 대형원전 2기를 건설하는 내용의 11차 전기본을 수립할 때 2023년 7월부터 전문가 91명이 참여해 1년반 동안 회의를 87차례 했다고 한다"며 "이에 대해 백지화도 할 수 있다는 식"이라고 거듭 지적했다.
김 장관이 신규 원전 건설에 모호한 태도를 고수하는 이유는 현 정부가 문재인 정부에 이어 '탈원전 시즌2'를 추진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위한 신중한 행보로 풀이된다.
윤 의원은 "김 장관은 구청장 시절 원전 건설을 반대했고, 민주당 정책위의장일 때는 원전이 위험하다고 했다"며 "강성 탈원전주의자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장관은 "원전이 위험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99.99% 안전하더라도 0.01% 때문에라도 위험성을 강조하는 게 적절하다"면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되 우리나라 특성상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해 조화롭게 가는 게 좋겠다"고 설명했다.
'원전 수출을 하지 말자'는 과거 발언 논란에 대해서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면서 "전 세계 배터리 수출 관련 수주 잔고가 1000조원에 달한다. 원전보다 훨씬 큰 산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김 장관은 이날 발전공기업 통합 추진과 관련한 청사진도 밝혔다. 김 장관은 "아직 논의 단계는 아니지만 의견 수렴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며 "발전공기업 통합은 구조조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석탄발전 축소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생에너지 공사를 따로 만들어 전환하는 방법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기후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이날 국감에서는 원전·석탄발전 외에도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된 4대강 사업과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신규 댐 사업 등 과거 정부의 대형 수자원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기후부는 문재인 정부 당시 취소됐던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과 관련해 "내년 상반기까지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한 5개 보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2021년 3개 보 철거와 2개 보 전면 개방을 결정했지만, 2023년 환경부는 이 결정을 취소한 바 있다.
김 장관은 윤석열 정부 시절 '기후대응댐' 명목으로 추진된 신규 댐 건설에 대해 "남은 7곳의 필요성과 다목적댐 추진의 타당성, 다른 대안이 있는지 등을 정밀 재검토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앞서 기후부(당시 환경부)는 지난달 30일 14개 댐 가운데 7개는 건설을 중단하고, 나머지 7개는 공론화를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립 과정의 투명성을 둘러싼 논란도 제기됐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기후부가 공개한 4가지 시나리오가 기술작업반이 검토한 5개 안과 다르다"며 "정부가 가장 낮은 감축안을 제시한 배경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충분한 기술적 검토를 거치고 있으며 오는 11월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전에는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또 "2035년까지 상용화 가능한 감축 기술이 7개에 불과한데 목표만 높게 잡았다"며 R&D 예산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장관은 "산업 부문이 가장 어렵고 늦었다는 데 공감한다"며 "탈탄소 기술 연구개발을 국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국감에서는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된 에너지 분야 업무보고 절차를 둘러싼 여야 간 공방도 이어졌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기후부로 에너지 업무가 넘어왔는데 한 차례도 정식 업무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며 "시험을 보는데 시험 범위도, 과목도 알려주지 않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김 장관은 "부처 개편 직후 보고를 하려 했으나 추석 연휴 일정으로 진행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결국 여야는 안호영 위원장 주재로 협의 끝에 오는 16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에너지 분야 별도 업무보고를 받기로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