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북·경남·울산 지역의 초대형 산불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안 공포안이 어제(2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산불 특별법에는 산불 피해자에 대한 금융부담 완화, 소상공인·중소기업 피해 복구 지원 등이 담겼습니다.
이처럼 대규모 산불이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가운데, 산불을 자연재난이 아닌 '복합재난'으로 보고 미국과 캐나다 등 산불 다발국처럼 '산림재난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습니다.
올해 영남권 산불, 전체 피해액 '1조원'
오늘(22일) 산림청에 따르면 산림청은 경북 5개 시·군 산불 등 인명과 시설피해가 많은 산불의 특성을 분석해 대형복합재난관리 체계에서 산불재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호남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복합 재난관리 체계에서 산불재난 관리방안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최근 20년간 산불발생 추이를 보면 발생건수와 피해면적이 전반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였습니다. 2015~2024년 최근 10년간 국내서는 100ha 이상 규모의 대형산불이 32건 발생했고, 3만5천357ha의 산림이 소실됐습니다. 특히 2017년부터는 거의 매년 2건 이상(2024년 제외)의 대형산불이 일어나 대형산분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같은 대형산물은 대부분 봄철 산불조심기간인 2월 1일부터 5월 15일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과거의 산불대응체계는 주로 중·소형 산불에 맞춰져 있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대형화, 동시 다발화되는 산불의 새로운 양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올해 3월 22일 영남권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대형산불 재난으로 확산됐습니다. 인명과 재산 모두에서 중대한 피해를 입는 복합재난 형태로 진행됐으며, 피해 규모는 국내 산불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 국가 차원의 비상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이 산불로 인해 총 31명이 사망하고, 51명이 중·경상을 입어 82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산불 인명피해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7년 이후 최대 수준입니다.
재산 피해도 컸습니다. 주택을 포함한 8천채 이상의 시설이 피해를 입었고, 이에 따른 총 피해액은 약 1조818억원에 이르렀습니다. 피해 면적은 약 10만3천876ha로, 2000년 동해얀 산불(2만4천ha)이나 2022년 울진·삼척 산불(약 1만6천ha)과 비교해도 월등히 큰 규모입니다.
무분별한 개발에 기후변화 영향까지
산불 확산시 가속화가 발생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먼저, 올해 겨울 강수량이 지난 10년 평균 대비 동해안 17.4%, 경남 2.4%로 무강우 일수와 건조기간이 지속됐고, 동해안의 산과 바다 간 기온 차로 강풍 특보가 다수 발효됐습니다.
또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의 대형화는 2020년 기준 임목축적이 1953년 대비 29배 증가하는 등 산불연료의 급증과 산림인접지의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대형화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산불의 연중화는 발생 일수가 1990년대 104일에서 2020년대에는 200일로 92% 증가했습니다. 2024년 1월 대비 2025년 산불 발생 건수는 1.9배, 피해 면적은 6.5배 급증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부적절한 토지관리나 쓰레기 소각 등 우발적 점화원, 기타 환경적 요인 등이 그간 영향을 줬지만, 기후변화의 영향이 다른 요인보다 커지는 추세에 따라 강원, 경북, 경남권 중심의 산불 규모와 빈도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산불은 '복합재난'…산림재난영향평가제 도입
이에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산불을 단순한 자연재난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환경적 피해가 중첩되는 복합재난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법제적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연구진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이원적 분류(자연재난과 사회재난)는 산불의 복합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므로, 산불을 독립적 복합재난 유형으로 규정하고 이에 특화된 관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복합재난'을 도입하게 되면 산불 대응에 있어 지방자치단체 간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하고, 피해에 대한 구제에 있어서도 국가에 대한 책임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책임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어 '산림재난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해 ▲개발계획 단계에서 산불 발생 가능성과 확산 위험 진단 ▲입지 조건, 식생 특성, 지역 기상 여건 종합적 검토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방화대책 및 대피체계 의무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의 환경영향평가제도나 재해영향평가제도는 산불의 특수성을 별도로 고려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연구진은 "산림재난영향평가제도는 지역 맞춤형 산불관리 전략 수립 기반으로 기능한다"며 "동해안, 남부 내륙, 수도권 인근 산림 등 지역별로 상이한 위험요인을 진단해 그에 맞는 방화선, 방재림, 대피로 확보 등 차별화된 관리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규모 개발사업이나 산지전용 과정에서 산불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경우, 산림재난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보완조치를 의무화하거나 사업규모를 조정할 수 있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를 통해 장기적 생태계 손실을 예방하고,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중립 정책과도 정합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같은 산림재난영향평가제도 도입은 국제적 기준과의 정합성 측면에서도 필수적입니다.
연구진은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산불 다발국가들은 이미 토지이용계획이나 건축허가 단계에서 화재 위험 평가를 제도화해 활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산림재난영향평가제를 통해 글로벌 재난관리 표준에 부합하는 정책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으며, 국제 협력과 정보 공유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산림청은 이번 연구용역 결과를 정책 및 법제 개선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산림재난영향평가제 도입 및 법령 개정 논의와 인명피해 예방을 위한 현장 대응 매뉴얼과 지자체 훈련 등에도 적용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