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탄생 때부터 있었던 물질과 반물질
서로 소멸 않고 물질만 남은 미스터리
원래 물질이 우위였다는 비대칭에 무게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비밀 단체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반물질(antimatter)을 훔쳐 바티칸을 파괴하려고 시도한다는 이야기를 썼다. 반물질은 우리가 아는 물질과 질량은 같고 전기적 성질만 정반대인 존재이다. 물질과 닿으면 서로 소멸한다. 소설의 설정처럼 CERN에서 하는 반물질 연구가 자칫 지구를 삼킬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진 것도 그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우주 탄생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같은 양으로 존재했다고 본다. 그런데 왜 우주가 소멸하지 않고 지금은 물질이 압도적으로 많을까. 미국과 일본에서 수백㎞를 오가는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를 관측해 그 단서를 찾았다. 처음부터 물질이 반물질보다 더 있었다는 이른바 ‘물질과 반물질의 대칭성 깨짐(CP-violation)’에 무게를 두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의 T2K 실험과 미국의 NOvA 실험은 각자 연구 결과를 공동 분석해 중성미자 질량 차이의 불확실성을 2% 미만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2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는 물질과 반물질의 대칭성 깨짐을 입증하는 데 도움을 줄 결과로 해석됐다.
중성미자는 우주 기본 입자의 하나로 질량이 거의 없고 다른 물질과 반응도 하지 않아 ‘유령 입자’로 불려왔다. 1930년대 미국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가 처음 이론적으로 제안했다. 별이 폭발하면서 나오고 우주에서 날아온 방사선이 대기 입자와 충돌할 때도 나타난다. 원전의 핵분열이나 입자가속기에서도 나온다.
이번 논문은 2010년부터 수집된 T2K 10년 치 데이터와 2014년부터 수집된 NOvA 6년치 데이터를 결합해 분석한 결과이다. 그동안 서로 경쟁하던 두 연구진이 힘을 합쳐 성과를 보인 것이다.
중성미자는 전자중성미자·타우중성미자·뮤온중성미자 3종류가 있다. T2K 실험은 일본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에 있는 양성자 가속기 연구 단지(J-PARC)에서 뮤온중성지마자를 쏘고 295㎞ 떨어진 가미오카의 지하 1㎞ 거대 수조에서 전자중성미자로 바뀌는 이른바 중성미자 진동을 연구했다. 14국 75개 기관에서 560여 명이 참여한 프로젝트이다. T2K는 ‘도카이무라에서 가미오카까지’라는 뜻이다.
미국의 NOvA도 같은 실험이다. 일리노이주 시카고 근처에 있는 에너지부 페르미 국립가속기 연구소에서 810㎞ 떨어진 미네소타주 애시 리버에 있는 1만4000t 액체 섬광 검출기까지 중성미자를 쏘고 뮤온중성미자가 전자중성미자로 변환하는 것을 관찰했다. 8국 49개 기관의 250여명이 참여했다.
유인태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번 T2K와 NOvA 연구 결과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 중의 하나인 중성미자의 질량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중성미자에서 물질-반물질 비대칭성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두 연구진은 어떤 중성미자가 가장 가벼운지 질문했다.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정상 순서(Normal Hierarchy)는 두 가지 중성미자가 비슷하게 가볍고 하나는 무겁다고 본다. 반전 순서(Inverted Hierarchy)는 두 가지가 비슷하게 무겁고 하나가 가볍다는 것이다.
정상 순서에서는 뮤온중성미자가 전자중성미자로 진동할 확률이 높아지지만, 뮤온반중성미자가 전자반중성미자로 진동할 확률은 낮아진다. 반전 질량 순서에서는 그 반대이다.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의 진동 비대칭성은 중성미자가 CP 대칭성을 위반할 경우, 즉 중성미자가 반물질 상대와 동일하게 행동하지 않는 경우에도 설명될 수 있다.
NOvA와 T2K의 통합 결과는 어느 질량 순서도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향후 결과가 중성미자 질량 순서가 반전됐음을 보여준다면, 오늘 발표된 결과는 중성미자가 CP 대칭성을 위반한다는 증거를 제공해 우주가 반물질이 아닌 물질로 지배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유 교수는 “이번 결과를 볼 때 현재 구축 중인 일본의 하이퍼-가미오칸데(Hyper-Kamiokande)나 미국의 듄(DUNE)과 같은 차세대 중성미자 연구시설에서 물질-반물질 비대칭성이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우주에서 왜 물질이 반물질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중성미자는 지금도 매초 엄지손톱만 한 면적마다 1000억개씩 지구를 지나간다. 이 유령 입자는 노벨상의 보고(寶庫)이다. 1956년 미국 물리학자 라이너스는 원전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처음으로 관측했다. 그는 199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88년 미국 과학자 세 명이 입자가속기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관측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다음은 일본의 전성시대다.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도쿄대 교수는 물 4500t을 담은 1세대 가미오칸데에서 초신성이 폭발할 때 나온 중성미자를 관측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의 제자인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교수는 가미오칸데의 업그레이판인 2세대 슈퍼가미오칸데에서 대기에서 발생한 중성미자가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종류가 바뀐 것을 관찰해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중성미자 노벨상은 거대 과학 실험 시설이 배출했다. 미국과 일본, 중국, 유럽은 차세대 중성미자 시설로 또 다른 노벨상을 노리고 있다. 중국은 올해 8월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차세대 중성미자 검출기인 장먼 지하 중성미자 관측소(JUNO)를 가동했다. 미국도 30억달러(약 4조3000억원) 규모의 중성미자 발굴 프로젝트 듄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은 차세대 중성미자 관측소인 하이퍼-카미오칸데를 구축하고 있다.
유 교수는 “일본은 3세대 하이퍼-가미오칸데 실험을 통해 중성미자 분야에서 3번째 노벨 물리학상을 기대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이 하이퍼-가미오칸데를 능가하는 한국중성미자관측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95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