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소매기업 월마트가 H-1B 비자가 필요한 외국인 채용을 잠정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규 H-1B 비자 신청 수수료를 대폭 올린 여파가 현실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21일(현지 시각)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월마트는 최근 H-1B 비자를 소지해야 하는 외국인 채용을 일시 중단했다. H-1B 비자는 숙련된 미국 근로자가 충분하지 않은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외국인을 고용하기 위해 도입된 취업 비자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월마트는 주요 소매업체 중 H-1B 비자 소지자 비중이 가장 높은 2390명 수준으로, 주로 본사 및 사무직 직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내 전체 직원인 160만명에 비하면 극소수이나, 글로벌 인재 확보 측면에서 제동이 걸린 것으로 풀이된다.
월마트 대변인은 “우리는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고 투자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H-1B 관련 채용 정책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H-1B 비자 프로그램 개편을 명분으로 신규 신청자에 수수료 10만달러(약 1억4318만원)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기존에 근로자 1명당 부담하는 H-1B 비자 발급 수수료는 약 5000달러 수준으로, 20배 가까이 가격이 치솟은 것이다.
혼란은 사실상 산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으며, 특히 IT와 연구직 등 해외 인력 의존도가 높은 업계의 경우 더 큰 역풍이 예측된다. 예컨대 아마존의 경우 2025회계연도 기준 1만명 이상의 H-1B 비자 소지자를 고용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애플, 구글 또한 각각 4000건 이상의 H-1B 비자 승인을 받은 바 있다.
행정부는 제도 남용 방지와 미국 내 숙련 인력 보호를 이유로 들었지만, 기업들은 들쑥날쑥한 정부 기조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H-1B 소지자들은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일해왔는데 정책이 매번 바뀌어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보이는가 하면, 기업들은 “비자 쿼터와 고비용이 인력 충원 능력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양상이다.
급기야 미국상공회의소는 트럼프 행정부 조치를 두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닐 브래들리 상공회의소 부회장은 “10만달러의 비자 수수료는 스타트업과 중견기업이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H-1B 제도는 미국 내 모든 규모의 기업이 성장에 필요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백악관은 “이번 조치는 H-1B 제도 개혁을 위한 점진적 조치로 법적으로도 정당하다”고 반박했으나,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을 계기로 기술·교육·의료 분야 등 산업계 전반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트르담 드 나무르대학의 존 비치 경영대학장은 “10만달러라는 금액은 다소 자의적으로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H-1B 제도의 변화와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 맞물리면서 특히 중소기업의 인력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