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목표 관련 순부채 관리 강조
“아베노믹스 계승 발전시킬 것”
일본 정계 사상 첫 여성 총리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일본 경제 조타수에 해당하는 재무상(財務相) 자리에도 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발탁했다. 주인공은 자민당 소속 3선 참의원인 가타야마 사츠키(片山さつき·66)다. 재무성(옛 대장성) 관료 출신인 그는 20여 년 만에 친정 수장으로 복귀했다. 주요 언론들은 정계 입문 당시 ‘고이즈미의 아이들’로 불렸던 그가 다카이치 내각 경제 정책 밑그림을 그릴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22일 아사히신문과 NHK 등에 따르면 가타야마 재무상은 일본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959년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나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시절 ‘미스 도쿄대’로 뽑혔고, 여성 잡지 독자 모델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1982년 그는 대장성에 입성한 5번째 여성 관료(국가공무원 1종)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남성 중심이던 관료 사회에서 그는 ‘여성 최초’ 타이틀을 독차지했다.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유학 후 국제금융국 과장보좌, 주계국(主計局) 주사(主査) 등 요직을 거쳤다. 주계국은 정부 예산을 편성하는 재무성 핵심 부서다. 2004년 여성 최초로 주계관에 올라 방위 예산 편성을 담당했다.
그는 21일 기자회견에서 관료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와타나베 미치오(渡辺美智雄) 장관에게 ‘여성도 세무서장, 주계국 주사, 주계관이 될 수 있나’라고 물었더니 ‘당신이 유능하다면 될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며 “이후 세 가지를 모두 해냈다”고 밝혔다 . 가타야마 재무상은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어딜 가든 여성으로서는 초대(初代)였다. 길 없는 길을 가는 데 익숙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2005년 23년 관료 생활을 뒤로하고 정계에 뛰어들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당시 총리가 추진한 우정 민영화 바람을 타고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당시 대거 등장한 자민당 신인 의원 83명을 언론은 ‘고이즈미의 아이들(小泉チルドレン)’이라 불렀다. 고이즈미 전 총리 역시 가타야마 신임 재무상을 ‘개혁의 마돈나’라고 칭하며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 돌풍에 밀려 낙선했다. 2010년 참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재기해 3선 의원이 됐다. 2018년 아베 내각에서는 지방창생담당상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섰을 때 추천인 20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며 전폭적인 지지를 표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경제 정책 부문에서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기치로 내걸었다. 재정 건전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재무성 노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가타야마 재무상 역시 전통적으로 재정 확대를 지지해 왔다. 그는 관료 시절인 2004년 주계관으로서 고이즈미 내각 ‘성역 없는 구조개혁’ 기조에 맞춰 방위 예산 삭감을 주도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정치인 전환 이후에는 적극 재정론자로 변신했다. 시장 역시 다카이치 내각이 재정 지출을 늘리고 일본은행(BOJ)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가타야마 재무상은 21일 취임 후 기자회견에서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이라는 생각에 기반해 경제·재정 운영을 하겠다”며 “경제 성장 전략으로 일본 경제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一丁目一番地)”라고 밝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는 “아베노믹스를 2025년 버전으로 이어가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다”고 덧붙였다.
첫 여성 재무상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블룸버그는 일본 경제가 어려운 재정(troubled finances) 상황에 부닥쳐 있는 가운데 가타야마 재무상이 취임했다고 전했다.
당장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첫 시험대다. 재무성은 고물가로 신음하는 가계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가타야마 재무상에게 사회보험료 부담이 큰 중저소득층 대책으로 ‘급부형 세액공제’ 제도 설계를 지시했다. 이는 저소득층 세금을 깎아주거나 현금을 돌려주는 제도로, 사실상 재정 지출 확대 요인이다.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한 일본유신회와 합의한 가솔린세 인하(옛 잠정세율 폐지), 조세특별조치(기업 세금 감면 혜택) 및 고액 보조금 총점검 등도 추진한다. 가타야마 재무상은 이 두 가지를 담당하는 특명대신을 겸임한다.
외환시장 변동성도 주시해야 한다. 그는 엔화 환율에 대해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반영해 안정적으로 추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 다만 로이터에 따르면 그는 지난 3월 인터뷰에서 “달러당 120~130엔대”가 적정 수준이며 물가 안정을 위해 엔고(円高)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현재 엔저 상황과 상반된 과거 발언이어서 향후 그의 외환 정책 방향이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정계에 머무르던 가타야마 재무상의 친정 복귀를 재무성 관료들이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마이니치신문은 현직 관료들 사이에서 그가 ‘무서운 선배’로 통하며, “(두려워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맞이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