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 “시장 경제 원칙 위배, ‘적정’ 기준도 모호”
건설 근로자 급여 안정성 강화 전망
정부가 건설근로자의 실질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적정임금제’ 제도화를 재추진하면서 건설업계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재 고금리·원자재값 상승으로 건설업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공사비 부담이 더 커지고, 시장 경제의 원리에서도 벗어난다는 이유에서다.
2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건설근로자 적정임금제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에 착수했다.
적정임금제는 발주처가 정한 시중노임단가 등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건설 근로자에게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다. 사실상 건설업에만 적용되는 ‘직종별 최저임금제’인 셈이다.
정부는 저가 수주 경쟁과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근로자의 임금이 삭감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정임금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내국인 청년층 건설 인력 유입을 늘리고 숙련공 고용을 확대하면서 재해 감소와 품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임금 정보를 활용해 직종별 적정 임금 기준을 산출하고, 공공기관 발주 공사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거쳐 제도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 제도는 2017~2021년 문재인 정부 때 시범사업이 추진됐다. 국가,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300억원 이상 사업장 20건에 시범사업으로 적정임금제를 실시한 결과 직종별 1~17% 임금상승이 이뤄졌다. 발주기관별 3~12% 내국인 채용 증가 효과도 나타났다.
당시 정부는 2023년 1월부터 적정임금제를 시행할 계획이었지만, 건설업계의 반발과 정권 교체로 추진 동력이 떨어지면서 제도 시행은 무산됐다.
건설업계는 이번에도 적정임금제 도입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가뜩이나 원자잿값 상승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악화로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데 적정임금제가 시행되면 건설업계가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시각이다.
중견건설사 A사 관계자는 “정부가 건설 근로자를 일정 기준으로 등급을 나눠서 임금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한다는 것”이라면서도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시기나 현장이 있으면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고 아닐 경우 내리는 건데 적정임금제가 도입되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임금이 상향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형건설사 B사 관계자는 “공공공사 먼저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발주처에서 적정임금제 도입으로 늘어나는 노무비만큼 공사비 원가를 올려줄 건지도 의문”이라며 “요즘 건설사들도 건설 시장이 어려워서 공사 수익이 매우 적거나 없을 경우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공공공사 유찰이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설명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숙련공으로 꼽히는 목수반장, 철근반장, 타일공 등은 하루 임금(평일 8시간 근무 기준)이 25만~30만원 정도다. 일반 일용직 건설 근로자 하루 임금은 18만원 수준으로, 올해 최저임금(약 8만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많은 편이다.
유선종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금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인데 숙련도나 시공능력을 어떤 기준으로 적정하다고 정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건설업에만 적정임금제를 도입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현재 건설 현장은 원자잿값 인상, 중대재해 리스크,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 부담이 큰데 어려움만 가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건설 근로자들의 급여 안정성 확보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로자 입장에서는 적정임금제로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급여 안정성이 커질 것”이라면서도 “건설사들은 그만큼 인건비 지출이 늘면서 공사비에 들어가는 원가도 올라가기 때문에 이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