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없는 치료 성분 CBD 주목…암·치매 새 해법 기대
자연에서 치료 해법을 찾는 ‘천연물 신약’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식물·동물·광물 등 자연 유래 물질 속에는 여러 질병에 작용하는 수십, 수백 가지 유효 성분이 있다. 그중에서도 ‘의료용 대마(大麻)’는 대표적인 천연물 신약 소재다. 통증을 완화하고 신경 흥분을 억제하는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난치성 뇌전증은 물론 암·치매 등 복합 질환 치료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
오는 22~24일 강릉에서 열리는 ‘제1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에서는 천연물 바이오 산업의 최신 연구 동향과 산업적 잠재력을 조명하는 논의가 펼쳐질 예정이다. 특히 의료용 대마를 중심으로 국내외 연구 현황과 제도적 과제가 주요 화두로 다뤄진다.
대마는 지금껏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으로 분류돼, 옷감이나 종이 원료 용도를 제외하곤 전 세계에서 재배와 사용이 모두 금지됐다. 그러나 대마의 꽃·잎에서 추출한 성분인 칸나비디올(CBD)은 중독성이 없으면서 통증을 완화하고 신경의 과도한 흥분을 억제해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CBD가 뇌전증, 파킨슨병, 치매, 우울증, 암 등 다양한 질환에서 치료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우리가 마약으로 알고 있는 마리화나는 환각·중독을 일으키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이 있다. 대마 꽃·잎에는 THC가 있지만, 치료 효과가 있는 CBD 성분도 함께 들어있다. 대마가 치료제로 변신하려면 꽃·잎에서 CBD를 추출하고 THC 성분을 0.3% 미만으로 떨어뜨리는 정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표적인 상용화 사례는 영국 제약사 GW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Epidiolex)’다. 이 약은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은 세계 최초의 의료용 대마 신약이다. 소아 희소·난치성 뇌전증인 드라벳 증후군과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환자의 발작 빈도를 50% 이상 줄였으며, 2021년부터는 결절경화증 치료에도 사용되고 있다.
에피디올렉스는 지난해 매출 9억7240만달러(한화 1조4400억원)를 올렸다. 올해부터 연 매출 10억달러를 넘는 대형 의약품을 일컫는 블록버스터 반열에 오를 전망이다.
국내에서 의료용 대마 연구를 가장 활발히 하는 곳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다. 이곳의 책임연구원인 함정엽 대표가 창업한 네오켄바이오는 의료용 대마 성분을 활용한 항암제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네오켄바이오는 최근 세포실험에서 CBD와 화학항암제 에토포사이드(Etoposide)를 병용 투여할 경우, 폐암 세포의 사멸이 촉진된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이 회사 연구진은 두 약물이 세포 성장과 단백질 생성에 관여하는 신호경로를 차단해 비소세포폐암 세포의 생존율을 낮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폐암뿐 아니라 간암·대장암 등 다른 암종에서도 여러 항암제와의 병용 효과를 검증하는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다. 네오켄바이오는 2021년 KIST 특허기술을 기반으로 국내 최초로 고순도 CBD 추출에도 성공했다.
다만 CBD 의약품을 상용화하고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인증 시설 구축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 절차가 필요하다. 현재로선 마약류관리법 하위 규정에 따라, 식약처 허가 범위 내에서만 연구·실험이 가능하다.
의료용 대마는 현재 미국(38개 주)을 비롯해 캐나다·영국·독일·호주 등 56개국 이상에서 합법화됐다. 마약에 보수적인 일본도 지난해 CBD 사용을 허용했고, 프랑스 역시 관련 법안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한국도 2019년 CBD 치료제를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대상 환자 기준이 엄격하고 보험 혜택이 적어 제도 개선 요구가 높다. 특히 국내에서는 CBD 치료제의 임상시험이나 상용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경북 안동의 대마규제자유특구가 의료용 대마 국산화를 위한 전초기지로 2020년 출범했지만, 아직 실질적인 상용화 성과는 없다. 연구기관들 역시 마약류관리법에 묶여 실제 환자가 참여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용 대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점차 변하고 있다. 평소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마리화나 냄새를 불평하는 것으로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최근 의료용 대마를 노인 의료보험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 미국 내 CBD 사용 확대 기대가 커졌다.
국내에서도 지난 6월 처음으로 국회에서 ‘의료용 대마 활성화 토론회’가 열리며 논의에 불이 붙었다. 정부는 경기도 연천을 비롯한 접경 지역에서 의료용 대마 재배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의료용 대마가 단순한 신약 소재를 넘어, 국산 천연물 신약 산업의 성장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규제 완화와 제도 정비가 병행된다면, 한국도 ‘자연에서 답을 찾는 신약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함정엽 네오켄바이오 대표는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 첫날 연사로 나서 현재 의료용 대마 개발 현황과 시장 전망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제1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
△일시: 2025년 10월 22일(수)~24일(금)
△장소: 강릉 세인트존스호텔 4층
△주최: 강릉시, 강릉관광개발공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한국관광공사, 조선비즈
△접수·문의: 070-5142-0540, Diana@withnnp.com
△전시 부스 관련 문의: 02-724-6064, pkb@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