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모나리자 도난 악몽 재현
세계 최고 박물관으로 꼽히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대낮에 전문 절도범들에게 털리는 사건이 발생해 프랑스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범인들은 개장 직후 관광객들이 입장하던 시각, 단 7분 만에 ‘값을 매길 수 없는(priceless)’ 왕실 보석을 훔쳐 달아났다. 1911년 ‘모나리자’ 도난 사건 이후 113년 만에 벌어진 최악 보안 참사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8억 유로(약 1조 1500억 원) 규모 루브르 개조 계획을 발표한 지 불과 1년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AFP와 르몽드 등에 따르면 사건은 19일(현지시각) 오전 9시 30분쯤 발생했다. 박물관이 문을 연 지 30분 만이다. 로랑 누녜즈 프랑스 내무장관에 따르면 3~4명으로 추정되는 절도범들은 ‘경험 많은 베테랑 팀’처럼 움직였다. 일부는 공사 작업자처럼 노란색 조끼를 입고 위장했다.
범행 수법은 대담했다. 이들은 센강과 마주한 박물관 외벽에 트럭에 실린 가구 운반용 승강기(바스켓 리프트)를 동원했다. 공교롭게도 이 구역은 현재 리노베이션 공사가 진행 중이던 곳으로, 보안 사각지대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영국 스카이 뉴스는 전했다. 범인들은 승강기로 1층 발코니에 도달한 후 그라인더, 소형 체인톱 등을 이용해 아폴론 갤러리 창문을 강제로 열고 침입했다.
침입부터 도주까지 걸린 시간은 단 7분이었다. 한 목격자는 현지 매체 TF1 인터뷰에서 “두 남자가 승강기에 올라타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데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 이들은 미리 준비한 오토바이와 야마하 티맥스(TMAX) 스쿠터 등을 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범행 현장은 파리 경찰청 본부에서 불과 800m 떨어져 있었다.
절도범들 표적은 아폴론 갤러리 진열장 2개였다. 아폴론 갤러리는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 모델로 삼았을 만큼 화려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프랑스 왕실 보석들이 전시돼 있다. 루브르 박물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갤러리에서 가장 귀중한 전시품은 ‘리젠트(Regent)’, ‘샌시(Sancy)’, ‘호르텐시아(Hortensia)’로 알려진 세 개 다이아몬드다. 이 중 1698년 인도에서 발견된 140캐럿 ‘리젠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로 알려졌다. 다행히 이 3대 다이아몬드는 도난당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프랑스 문화부는 도난품이 총 8점이라고 밝혔고 , 현지 매체 르 파리지앵은 9점이라고 보도했다 . 도난품에는 나폴레옹 1세가 황후 마리 루이즈에게 선물한 에메랄드·다이아몬드 목걸이 등이 포함됐다. 말 그대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유산이다.
도주 과정에서 19세기 나폴레옹 3세 부인 외젠 황후 왕관 1점이 박물관 인근에서 파손된 채 발견됐다. 이 왕관은 1354개 다이아몬드와 56개 에메랄드로 장식된 화려한 유물이다. 라시다 다티 문화부 장관은 “발견된 유물이 감정 중”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번 루브르 도난 사건은 1911년 ‘모나리자’ 실종 이후 114년 만에 가장 규모가 크다. 1911년 모나리자 실종 당시 작품은 범인 빈센초 페루자가 2년 뒤 검거된 이후에야 반환됐다. 이 사건 외에도 1976년 샤를 10세 즉위식 보검 , 1990년 르누아르 그림 , 1998년 카미유 코로 그림 등이 루브르에서 도난당했다. 1983년 사라진 르네상스 시대 갑옷 두 점은 38년 만인 2021년 극적으로 회수되기도 했다.
이번 루브르 참사는 프랑스 박물관이 연쇄적으로 표적이 되는 와중에 발생했다. 지난 9월 파리 자연사 박물관에서 60만 유로(약 8억 6000만 원) 상당 금 샘플이, 리모주 국립 도자기 박물관에서 650만 유로(약 94억 원) 가치 중국 도자기 3점이 털렸다. 지난해 11월엔 파리 코냑 박물관에 강도들이 대낮에 도끼를 들고 침입했다.
라시다 다티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박물관 보안은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니라”라면서 “40년간 아무도 이들 주요 박물관 보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TF1 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박물관이 새로운 형태 범죄, 즉 조직범죄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질적인 관리 인력 부족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루브르는 하루 최대 3만 명, 연간 900만 명(2023년 기준) 가까이 방문한다. 직원 노조는 ‘대규모 관광(mass tourism)’으로 만성적인 인력 부족이 보안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꾸준히 경고했다. 방문객이 너무 많아 감시할 직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