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리스 화재로 알루미늄 공급 차질
넥스페리아 반도체 수출 중단까지 겹쳐
미국의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생산라인을 중단하고 있다. 주요 알루미늄 공급업체 공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와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 반도체 공급망에도 차질이 발생한 탓이다.
19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프(Jeep)의 주요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를 생산하는 스텔란티스 미시간주 공장이 알루미늄 부족으로 지난주 가동을 중단했으며, 다음 달 초까지 생산을 멈출 예정이다. 지프는 스텔란티스의 SUV 브랜드로, 미시간 공장에서는 지프 왜고니어와 그랜드 왜고니어 등을 생산하고 있다.
포드 역시 같은 이유로 켄터키주 공장에서 소형 SUV 모델인 익스페디션과 링컨 내비게이터 등의 생산을 중단했다. 포드는 이 공장에서 두 모델의 조립을 오는 26일까지 중단할 계획이다. WSJ는 공장 근로자들의 말을 인용해 10만 달러(약 1억 4000만 원)가 넘는 고급 모델과 F-시리즈 슈퍼 듀티 트럭의 생산도 축소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미국 자동차 공장들이 멈춰선 1차적인 이유는 주요 알루미늄 공급업체인 노벨리스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이다. 노벨리스는 포드의 F-150 픽업트럭을 비롯한 주요 차량에 사용되는 자동차용 알루미늄 판재를 공급하는 핵심 업체인데, 지난달 뉴욕주 오스위고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공장은 미국 자동차 산업 전체 알루미늄 판재의 약 40%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드 대변인은 노벨리스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잠재적인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중 갈등의 연장선으로 네덜란드 기반 반도체 업체인 넥스페리아의 수출이 중단되면서,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앞서 네덜란드 정부는 넥스페리아가 모회사인 중국 윙테크로 핵심 기술을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넥스페리아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비상조치를 시행했다. 이에 반도체 수출도 금지됐다. 당시 일부 외신은 네덜란드 정부의 이러한 조치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압박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제너럴모터스(GM), 도요타, 포드, 폭스바겐, 현대차 등이 속한 미 자동차혁신연합(AAI)은 반도체 수출 중단이 자동차 생산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신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AAI의 존 보젤라 대표는 “자동차용 칩 선적이 조속히 재개되지 않으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고, 다른 산업에도 여파가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반도체 공급이 급감해 큰 타격을 입은 자동차 업체들은 이후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이번 상황에서는 그 효과가 없었다고 WSJ는 전했다. 당시에는 반도체라는 단일 품목의 공급만 차질을 빚었지만, 지금은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여러 품목의 공급이 동시에 중단됐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 오토포캐스트 솔루션즈의 샘 피오라니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사태에서 얻은 교훈은 제조업체들이 공급망에서 발생할 일부 문제에 대비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렇게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닥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고, 매우 대응하기 어렵다.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미국과 무역 갈등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자동차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까지 통제하고 나섰다. 전 세계 정제된 희토류 생산량의 약 90%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희토류 수출이 제한되면서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생산을 지속하기 위한 우회로를 찾아야 했고, 일부 업체는 미국에서 만든 모터를 중국으로 보내 자석을 장착한 뒤 다시 들여오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검토했다고 WSJ는 전했다.
여러 악재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자동차 업계의 내년도 전망은 밝지 않다. S&P 글로벌 모빌리티에 따르면, 올해 미국 자동차 판매량은 2024년에 판매된 1590만 대를 다소 웃도는 수준에서 마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 부담 등으로 차량 평균 가격이 약 5만 달러(약 7000만원)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여, 업계는 내년에도 판매량이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