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세포 손상하는 타우 단백질 찾아
혈중 아밀로이드베타와 타우 비율로도 판정
“혈액 진단, 이제 1회 초...발전 가능성 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 환자 3분의 2를 차지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최근 치료제가 잇따라 출시돼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겼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모두 초기 단계 환자에 듣는 약인데 아직 조기 진단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기존 검사는 고가(高價)의 의료 영상 촬영을 하거나 척수액을 추출하는 것처럼 환자에 큰 불편을 줘 쉽게 하기 어려웠다.
앞으로 동네 병원에서 간단하게 혈액을 뽑아 알츠하이머 치매 검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13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약사 로슈와 미국 일라이 릴리가 공동 개발한 혈액 검사인 ‘엘렉시스(Elecsys) pTau181’을 1차 의료 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알츠하이머병 진단 검사로 허가했다“고 밝혔다.
로슈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312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알츠하이머병을 97.9%의 정확도로 배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병 혈액 진단 검사가 FDA 허가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5월 일본 바이오 기업 후지레비오(Fujirebio)도 알츠하이머병 혈액 검사로 FDA 승인을 받았다. 이제 치매 혈액 검사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올해 FDA 승인을 받은 혈액 검사는 모두 혈액에서 특정 단백질을 찾아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손상을 준다. 타우 역시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지만, 신경세포 안에서 인산(燐酸)기가 달라붙어 변형되면 서로 엉킨 덩어리가 되고 인지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로슈의 엘렉시스는 혈액의 액체 성분인 혈장에서 인산(p)이 달라붙은 특정 타우 단백질 형태인 pTau181을 측정한다. 이 검사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타우 단백질이 얼마나 변형됐는지 정량화한다. 그렇다고 로슈가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바로 가려낸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 인지 기능이 떨어졌지만, 알츠하이머병까지는 아니라고 진단하는 방식이다,
질병 진단의 정확도는 두 가지가 있다. 민감도(sensitivity)는 질병이 있는 사람을 ‘있다’고 얼마나 정확하게 판정하는지를 의미하고, 특이도(specificity)는 반대로 질병이 없는 사람을 ‘없다’고 얼마나 정확하게 판정하는가를 뜻한다. 이렇게 보면 로슈의 엘렉시스는 알츠하이머병을 약 98% 특이도로 진단하는 셈이다.
후지레비오가 개발한 루미펄스(Lumipulse) 검사는 혈중 인산화된 타우 단백질인 pTau217과 아밀로이드 베타1-42 단백질의 비율을 검사한다. 이론상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먼저 축적되고 그다음에 pTau181과 pTau217 덩어리가 나타난다.
루미펄스는 알츠하이머병을 양성과 음성 모두 진단할 수 있다. 499명 대상 임상시험에서 루미펄스 검사를 받은 사람 중 알츠하이머병이 아니라고 판정받은 사람은 97%가 나중에 후속 진단에서 실제 음성으로 확인됐다.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은 92%가 후속 검사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다. 즉 루미펄스의 알츠하이머 진단 정확도는 민감도가 92%, 특이도 97%라는 의미다.
의료계는 두 혈액 검사가 지금까지 진단의 회색 지대에 있어 찾지 못하던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조기 진단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엘렉시스는 미국에서 인지 기능 저하 징후나 증상을 보이는 55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허가됐다. 의료계는 미국에서 55세 이상 5명 중 2명 이상(42%)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그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앓는 성인의 92%는 진단을 받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다. 그런데도 간편한 검사법이 없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조앤 파이크(Joanne Pike) 미국 알츠하이머 협회 회장은 지난 13일 보도자료에서 “이번 승인은 알츠하이머병 진단의 접근성 확대를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진전”이라며 “1차 진료 환경에서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배제하는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인지 기능 저하의 원인을 더 빨리 파악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알츠하이머병 진단은 고가의 양전자단층촬영(PET) 장비로 뇌를 촬영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를 찾거나 뇌척수액을 직접 뽑아 분석하는 방식이다. 혈액 검사로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아닌 사람을 가린다면 힘들고 비싼 검사를 하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다. 또 혈액 검사에서 알츠하이머병 환자로 판정되면 기존 검사로 확정하고 역시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미 FDA는 2023년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레켐비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허가했다. 이듬해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키순라를 역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개발했다. 둘 다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를 제거하는 항체 치료제로, 초기 환자 대상이어서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알츠하이머병 혈액 검사는 엄청난 의료비 절감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전 세계 치매 환자는 5700만명이며, 2050년까지 세 배로 증가할 수 있다. 치매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019년 현재 1조3000억달러(한화 1851조 4600억원)에 이르는데, 환자의 60%가 중·저소득 국가에 있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혈액 검사가 일반화되면 조기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 그만큼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
과학계는 알츠하이머병 혈액 검사가 더 다양해지면 환자 진단과 치료가 더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신경과 전문의이자 바이오마커(생체지표) 연구자인 애슈바니 케샤반(Ashvini Keshavan) 교수는 지난 1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알츠하이머병의 바이오마커를 측정하는 혈액 검사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며 “이 분야에 경쟁이 있다는 의미이므로 긍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알츠하이머병 예방 병원을 설립한 리처드 아이작슨(Richard Isaacson) 박사는 14일 CNN 인터뷰에서 “알츠하이머병 혈액 검사 기술의 미래에 대해 신중한 낙관론을 유지한다”며 “말하자면 9회 야구 경기의 1회 초에 불과하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Roche(2025), https://diagnostics.roche.com/us/en/news-listing/2025/fda-cleared-ptau181-alzheimers-blood-test.html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5-03394-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