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사상 최다”... ‘곰과의 전쟁’ 나선 日, 도심 출몰 ‘어번 베어’에 비명

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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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7명 희생
2006년 통계 작성 이래 최악
‘개체 수 증가·기후 변화·사냥꾼 감소' 원인

일본 열도가 곰 공포에 휩싸였다. 산에서 내려와 도심을 배회하는 이른바 ‘어번 베어(urban bear·도시 곰)’에 의한 인명 피해가 올해 역대 최악 수준까지 치솟았다. 4월 이후 곰 습격 사망자는 사상 최다인 7명까지 뛰었다. 먹이를 찾아 민가로 내려온 곰들이 갈수록 대담해지자, 일본 정부는 지자체 판단만으로 곰을 즉시 사살할 수 있도록 법까지 바꿨다.

일본 홋카이도 샤리 도로에서 목격된 갈색곰 두마리. /연합뉴스

지지통신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은 17일 일본 북동부 이와테현에서 60세 온천 시설 종사자가 곰 습격을 받아 실종됐다고 전했다. 경찰은 실종된 직원이 청소를 하던 중 안경과 샌들, 청소도구만 남기고 곰에게 끌려간 것으로 추정했다.

5일 전 12일에는 홋카이도 후쿠시마초 주택가에서 신문을 배달하던 70세 남성이 몸길이 2m, 체중 218kg에 달하는 거대한 불곰에게 습격당해 숨졌다. 이달 초 3일 미야기현 구리하라시 산속에서는 버섯을 채취하던 70대 여성 시미즈 하루에(75)씨가 곰에게 습격당해 숨졌다. 함께 갔던 4명 그룹 중 다른 여성 1명은 보름이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숨진 시미즈씨는 직접 채취한 버섯으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 주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동행했던 남성은 “곰을 쫓으려고 폭죽 3발을 터뜨렸는데, 오히려 그 소리가 곰을 부른 것 같다”고 말했다.

곰 피해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이와테현에서는 참혹한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4일 기타카미시 한 민가에 반달가슴곰이 침입해 81세 여성을 살해했다. 곰이 집 안까지 들어와 사람 목숨을 앗아간 첫 사례였다. 8일에는 같은 현 기타카미시 산림에서 버섯을 따러 갔다가 실종된 7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며칠 뒤에는 머리가 없는 남성 시신이 발견되는 등 곰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망 사건이 잇따랐다.

10월 7일 군마현 경찰이 지지 언론에 공개한 CCTV 카메라 영상에 군마현 누마타의 슈퍼마켓 내부를 걷고 있는 곰의 모습이 담겨있다. /연합뉴스

일본 환경성에 따르면 올해 4월 회계연도 시작 이후 곰 습격으로 인한 사망자는 7명에 달한다. 홋카이도와 이와테현에서 각 2명, 미야기·아키타·나가노현에서 각 1명이 희생됐다. 이는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6년 이래 가장 많은 수치로, 종전 최다 기록인 2023년 6명을 넘어섰다. 부상자 역시 100명을 훌쩍 넘겼다.

사망 사고만 문제가 아니다. 곰 출몰 자체도 폭증했다. 일본에서 곰은 이제 온천, 마트, 버스 정류장 등 일상 공간까지 파고들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후쿠시마현 이자카 온천 리조트에서는 곰 한 마리가 10시간 동안 주차장과 숙박시설을 돌아다녀 영업을 중단했다. 도쿄 바로 위 군마현 누마타시 한 식료품점에는 1.4m 크기 곰이 들어와 쇼핑객 2명을 공격하고, 생선과 초밥 코너를 뒤지다 아보카도를 짓밟는 등 난동을 부렸다. 세계문화유산인 기후현 시라카와고 마을에서는 버스를 기다리던 스페인 관광객이 곰에게 공격당하기도 했다.

피해가 극심한 아키타현에서는 10월 12일 기준 곰 목격 건수가 5400건을 넘었고, 32명이 다치고 1명이 숨졌다 . 9월 한 달 동안 일본 전역에서 발생한 곰 습격 부상자는 39명으로, 지난 10년간 9월 수치로는 가장 많았다.

일본 반달가슴곰은 최근 20년간 서일본에서 서식지 분포가 확대됐고 불곰은 연평균 35.2㎢로 느리게 확대됐지만 홋카이도의 80%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리오카시 동물공원

일본 매체들은 올해 유독 곰 피해가 급증한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있다고 전했다. 우선 기후 변화 영향으로 곰 주식인 너도밤나무 열매 등이 흉작을 맞은 탓이 크다. 겨울잠을 앞두고 먹이를 구하지 못한 곰들이 인가로 내려오는 사례가 잦아졌다. 과거 곰 습격은 주로 가을철에 집중됐다. 올해는 4~6월 봄·여름에도 37명이 다치는 등 가을 이전부터 계절을 가리지 않고 피해가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사회 구조 변화를 곰 피해가 부쩍 늘어난 원인으로 꼽았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처럼 농촌 인구 감소와 심각한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 농촌 거주자가 줄면서 경작지와 주거지 사이 완충 역할을 하던 유휴지는 방치되는 추세다. 사람이 물러난 자리는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 곰들이 지내기 좋은 서식지로 바뀌었다. 여기에 곰 보호 정책으로 개체 수가 꾸준히 늘어난 반면, 전문 사냥꾼은 고령화로 급감하면서 개체 수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개체 수가 늘어난 곰이 먹이가 부족해지자 인간과 가까운 서식지로 도시로 내려오는 조건이 형성된 셈이다.

곰 출현 주의 표지판. /셔터스톡

상황이 심각해지자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1일부터 개정된 조수보호관리법을 시행하고 있다. 곰이 주택가에 나타나 인명에 위협을 가하면 경찰 지휘 없이도 지자체장이 판단해 즉시 총기 사살을 위탁할 수 있게 했다. 이틀 전인 15일 센다이시는 이 제도를 활용해 주택가 잡목림에 나타난 1.4m 크기 수컷 곰을 사살했다. 일본 전역에서 첫 ‘긴급 총기 사살’ 사례였다.

도치기현 경찰은 지역 수렵회와 합동으로 실전 같은 곰 퇴치 훈련을 벌였다. 사람이 반달가슴곰 탈을 쓰고 나타나자 사살 과정을 시연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프로그램이다. 곰 출몰이 잦은 지역에서는 곰이 열지 못하게 특수 설계한 쓰레기통을 설치하거나, 곰을 쫓는 목적으로 ‘베어 도그’라 이름 붙인 맹견류를 키우는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스즈키 켄타 아키타현 지사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구제가 가장 큰 임무”라면서도 “시정촌이나 수렵회 인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계속 구제하는 것은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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