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이 다시금 격화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이 관세 및 수출 통제와 강제노동방지법(UFLPA)을 동시에 강화하자, 중국은 희토류 등 핵심 소재의 수출 통제로 맞대응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이 같은 미국 정부의 대중(對中) 규제 강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과 거래하고 있거나 다른 여러 방식으로 연결된 한국 기업들에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부품이나 원재료를 중국에서 조달하거나 중국 투자자가 지분을 들고 있는 회사의 경우 미국의 제재망에 걸릴 위험이 있다. 이런 경우 미국 UFLPA에 따라 통관이 막히거나 더 나아가 세컨더리 제재가 적용돼 결제나 금융 거래가 중단될 리스크까지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코브레앤김(Kobre&Kim) 서울 사무소에서 이숭현 변호사를 만나 우리 기업이 미국의 규제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코브레앤김은 한국인 김상윤 대표변호사가 스티븐 코브레 변호사와 함께 2003년 설립한 글로벌 로펌이다. 미국, 중국, 영국, 브라질, 두바이 등 전 세계 10개국에 15개 사무소를 두고 있다. 이 변호사는 미 연방검사 출신으로 검사 시절 공적 부패, 투자 사기, 자금 세탁, 세금 사해행위 등 형사 사건을 주로 맡은 바 있다.
―코브레앤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달라.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다. 특정 지역에 위성 사무실을 두고 있으나 로컬 시장을 커버하는 모델은 아니다. 크로스보더(Cross-border·국경을 넘나드는) 요소가 있는 사건을 맡는 데 특화된 로펌이다. 즉, 서울 사무소라고 해서 서울의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미국, 유럽, 중국 등 여러 나라 고객의 사건을 맡고 있다."
―본인의 배경과 그동안 수행했던 대표적인 사건들을 공개 가능한 선에서 소개한다면.
“니치(niche)한 분야의 법률 자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과거 정부에서 일했으며, 법무부뿐만 아니라 미국 국방부에서도 일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에서는 정부 계약 및 방위산업 계약을 담당했으며 샌프란시스코로 옮겨서는 국방부 소속으로 환경법 문제를 맡았다.
검사로서만 일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규제 전반에 관해 많이 경험한 것이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며 미 정부의 규제로 인해 사업체나 개인이 영향을 받는 일들을 주로 맡고 있다.
그간 맡았던 사건으로는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과 삼성 간 소송 사건(엘리엇 대리), 엘리엇과 현대차그룹 간 소송(엘리엇 대리),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진행된 메디톡스, 대웅제약, 휴젤 간 보톡스 분쟁 사건(대웅·휴젤 대리), 테라·루나 사건(테라 대리),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관련 소송(트위터 대리) 등이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미 정부의 대외 규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미국 정부 차원의 규제는 법무부나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을 통해 존재해 왔다. 과거에는 테러리스트 그룹, 북한 핵, 해킹 그룹 등이 주요 타깃이었다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러시아 관련 기업과 올리가르히(재벌)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이동하긴 했다.
OFAC이 관리하는 특별지정 제재 대상 목록(SDN 리스트)에 러시아 관련 기업이나 재벌이 올라가면, 이들은 경제 무역 제재를 받게 된다. 기본적으로 달러 사용 및 은행 이용이 막혀 사업에 큰 지장을 받고, 미국 기업은 이들과 거래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미국 외의 기업들도 이들과 거래하면 세컨더리 제재(Secondary Sanctions)를 받을 수 있어, 한국 기업도 달러 사용이 막혀 계좌 동결이나 형사 처벌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러시아의 에너지 조달 경로와 관련된 쇄빙선 건조 등을 막는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이미 수주 계약이 체결된 해외 업체들은 난감한 상황에 놓였었다. 또 SDN 리스트에 오른 러시아 재벌이 최종 수익자로 있는 기업과 거래할 경우에도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
―한국 기업인이나 한국인이 SDN 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다는 얘긴가? 어떤 경우에 오르게 되는지.
“가능하다. 가장 간단하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 조달에 관여하거나, 러시아 쪽에 직접 무기를 제공하거나, 푸틴 정부에 자금을 대주거나, 제재를 무시하고 푸틴과 긴밀히 일하는 올리가르히와 거래해 그쪽에 이익을 주는 행위를 할 경우 SDN 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
상식적으로 한국 기업인이 그럴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SDN에 오른 러시아 올리가르히가 소유한 기업과 한국 기업이 계속 거래를 하면서 그쪽에 이익을 주거나 돕는다면, OFAC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제재 대상 업체로 볼 수 있다."
―기업인이 모르는 사이에 SDN 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나?
“모르는 사이에 올라갈 수도 있다. 그리고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SDN 리스트는 기본 행정 조치와 달리, 미국 정부의 국가 안보에 저해된다고 판단되는 인물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문제는 이런 제재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성격이 크기 때문에, 기존의 법규 체제로 뒤집거나 어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쉽게 말해 미국 정부의 재량권(discretion)이 매우 큰 영역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이런 규제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지.
“규제 자체가 바뀌기보다 포커스(초점)가 바뀔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규제 강도는 실제로 낮아지고 있다. 반면 중국에 대한 규제는 더 올라가고 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러시아와 기존에 하던 일을 조정하는 도중 중국과의 거래에서 또 다른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중국의 경우 OFAC 제재 외에 다른 종류의 제재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과 관련해 새로 늘어나는 규제는 무엇인가.
“미국 국토안보부(DHS) 산하에는 강제 노동 집행 태스크 포스(Forced Labor Enforcement Task Force)라는 부서가 있다. 이를 통해 강제 노동으로 만들어진 제품, 서비스, 광물 등의 수입을 차단하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위구르족 강제 노동 방지법(UFLPA·Uyghur Forced Labor Prevention Act)을 통해 위구르 지역에서 나온 물품의 수입을 차단하고 있다. 이 ‘강제 노동’의 적용 범위는 꽤 넓은데, 여기에 해당하는 기업은 수입 자체가 막히는 큰 불이익을 얻을 수 있다.
미 정부는 기본적으로 ‘위법한 일들을 통해 생산된 제품이나 기술은 미국으로 가져올 수 없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즉 적법하고 미국의 기준에 맞는 것들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봤을 때는 중국 기업이나 개인들을 압박하는 용도로 쓰인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 강제 노동을 통한 생산이 많다 보니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시대에는 중국을 겨냥한 이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술 수출 관련 제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미국 상무부(Department of Commerce) 산하의 산업안보국(BIS)이 수출 관리 규정(EAR)을 통해 제재를 집행한다. 미국 정부가 정한, 군사적 목적과 상업적 목적이 모두 있는 ‘듀얼 유즈 아이템(Dual Use Item)’으로 분류되는 기술을 외부로 수출하거나 외국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제재다.
이는 민·형사상 심각한 수준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대형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던 한국인 엔지니어가 퇴사 후 한국에서 사업체를 만들면서, 미국에서 반출이 허락되지 않은 듀얼 유즈 기술을 사용한 혐의로 범죄자 인도 절차를 거쳐 미국에서 사건을 종결한 케이스도 있었다. 최근에는 이런 제재가 중국인, 중국 회사들에 많이 적용되는 추세다."
―한국 기업인들은 아직 미국의 제재에 대해 민감하진 않은 것 같다.
“한국 기업이 SDN 리스트에 많이 올라가 있지는 않아서 그런 듯하다.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실제로 러시아 제재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기업의 사건을 내가 맡고 있다.
한국 기업이 문제에 휘말리는 이유는, 법조인들이 미 정부의 규제에 익숙하지 않아 놓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기업과 자회사는 법적으로 별개의 법인체이지만, 정부 규제는 법적 의미를 따지지 않는다. 누가 이익을 보고 영향을 받는지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독립된 회사일지라도 실제 사업 관계나 오너십을 따져봤을 때 같은 단체라고 판단되면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기업인이 SDN에 올라 위기에 처했을 때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일단 SDN에 올라가면 이름을 내리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올라가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SDN에 오를 것 같은 징후를 미리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외국 회사들은 컴플라이언스가 발달해 거래 대상에 대한 심층 분석을 통해 제재 리스크를 체크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그게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기업이 많다.
만약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면, 우리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실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디리스팅(Delisting·명단제외) 신청을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우리는 미국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야 한다. 투자가 될 수도 있고, 양해각서(MOU) 체결 등 교류가 될 수도 있다."
―경쟁사가 제재 리스크를 이용해 약점을 공격하는 사례도 있는지.
“있다. 과거 미국 방산업체에서 일하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엔지니어 사건의 경우, 같이 일하던 사람이 미국 정부에 고발한 케이스였다. 내부에서 일하다 불만이 있거나, 경쟁 구도에 있는 다른 업체로 옮겨간 뒤 내부 약점을 알고 이를 통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국제 제재 분쟁 해결 업무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러한 일이 터지면 법률적 문제뿐 아니라 투자자 관계(IR), 정부 관계(GR), 홍보(PR)가 모두 중요해진다. 단순한 법률적 해결을 넘어 비즈니스 전반을 통틀어 봐야 하는 종합 예술이다. 제재 리스크가 터지는 순간 투자자 관계나 정부 수주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률적인 것만 보지 않고 IR, GR, PR의 순서와 타이밍을 아우르는 헤드 코치(총괄 지도)처럼 진행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이 불거지면 흔히 발생하는 개인 형사 문제까지 함께 다룰 수 있다. 인터폴 적색 수배, 범죄인 인도 요청, 한국 검찰과의 공동 수사 요청 등과 같은 병행 수사를 연방 검사 시절 직접 수사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