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는 일화가 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 전선에서 영국군과 독일군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이틀간 교전을 멈춘 사건이다. 두 국가의 군인들은 크리스마스에 축구 시합을 벌이며 잠시나마 서로를 향해 겨누던 총부리를 거뒀다. 이 일화는 1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인류가 보여준 ‘희망과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2025년 한국은 여야 대립으로 1시간 30분 동안 게임 한판 못하는 시대가 됐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청년 정치인 화합과 취약계층 기부를 위해 지난 5일 개최한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행사에는 이 대표와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모 의원이 행사 3일 전 돌연 불참을 선언했다.
모경종 의원실은 불참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모 의원이 민주당 강성지지층인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았다는 건 여의도에선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모 의원도 소셜미디어(SNS)에 불참을 알리면서 “스타크래프트 대회 참가 소식으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쳤다”면서 “여러분의 회초리를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이 행사는 전직 프로게이머, 감독들도 참여한 가운데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 대표는 자신의 닉네임을 ‘내부총질러’로 했고, 김 의원은 테란을 선택한 상대편을 향해 ‘비핵화’를 언급해 웃음을 자아냈다. 유튜브 중계로 행사를 지켜본 사람들도 ‘신선하고 훈훈했다’고 평가했다.
행사를 주최한 개혁신당에서는 모 의원의 불참을 두고 민주당이 ‘갈등과 불화’로 먹고살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여야를 떠나 ‘청년 정치인 화합’과 ‘명절 기부’도 함께하지 못하냐는 비판이다. 김 의원도 행사에 앞서 “의원들끼리는 같이 해보려는 의지가 있는데 민족의 명절까지 여야의 극한 대치를 해야 하느냐는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서민들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이번 추석을 보냈다. 민주당은 이런 사정을 모르는지, 연휴 내내 ‘내란종식’과 ‘사법개혁’만 외쳤다. 대통령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논란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체포 같은 이슈도 추석 밥상머리에 올랐다. 계속되는 정쟁을 지켜보는 유권자의 피로도만 높아진다.
‘갈등과 불화’가 팍팍해진 민생경제를 살리는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여야 협치로 민생법안 하나라도 통과시키는 ‘희망과 평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여당이 더 많이 가졌으니 좀 더 많이 내어주면 좋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처럼, 집권 여당이 명절에 게임 한판을 할 정도의 여유는 가져야 협치가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