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노산 4개 바꾸는 돌연변이는 정반대
인간 유전자 같은 변이, 수명 12년 연장 가능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2013년 바이오 기업 칼리코(Calico)를 세웠다. 목표는 노화(老化)의 비밀을 알아내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그것도 10년, 20년이 아니다. 500세 이상이다.
칼리코가 수명 연장의 모델로 삼은 동물은 벌거숭이두더지쥐(학명 Heterocephalus glaber)이다.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 사는 이 동물은 몸길이가 8~10㎝에 몸무게는 30~35g이고, 이름 그대로 털이 거의 없다. 겉보기에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놀랍게도 수명이 32년으로, 같은 크기의 다른 쥐보다 10배 이상이다. 사람으로 치면 800세 이상 사는 것이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암에도 걸리지 않고 통증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산소가 없어도 18분을 견딜 수 있다. 중국 과학자들이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암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비결을 새로 찾아냈다. 생명 정보가 담긴 DNA에 손상이 생기면 바로 복구하는 단백질이다. 인간에서는 암을 유발하던 단백질인데 두더지쥐에서는 돌연변이가 생겨 정반대 역할을 한다. 말썽꾸러기가 효자로 변신한 셈이다.
중국 통지대의 마오 지용(Zhiyong Mao) 교수 연구진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장수 비결은 외부 침입자를 감지해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효소인 cGAS(고리형 GMP-AMP 합성효소)에 생긴 돌연변이 덕분임을 알아냈다”고 1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cGAS는 세포핵 밖에서 DNA를 감지했을 때 특정 신호를 낸다. 외부에서 온 DNA는 암이나 바이러스 공격의 징후일 수 있다. 그런데 cGAS가 세포핵 안에서는 정반대 모습을 보인다. 인간과 생쥐에서는 DNA 복구를 억제해 유전자 돌연변이와 암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불분명하다.
마오 교수 연구진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cGAC 단백질은 세포핵에서 DNA 복구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같은 효소인데 인간과 두더지쥐에서 정반대 기능을 하는 이유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 단 네 가지가 바뀐 데 있었다.
연구진이 벌거숭이두더지쥐 세포에서 이 네 가지 아미노산을 인간처럼 바꾸자 cGAS가 더 DNA 복구를 촉진하지 않았다. 반대로, 인간 cGAS에서 아미노산 4개를 벌거숭이두더지쥐처럼 바꾸자 예전처럼 DNA 복구를 억제하지 않았다.
실제 실험에서 변이 효소가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가 입증됐다. 연구진은 인간과 같은 cGAS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로 실험했다. 유전자를 변형해 벌거숭이두더지쥐와 같은 형태의 cGAS를 만들도록 했다. 일반 초파리 수명은 약 60일인데, 유전자가 바뀐 초파리는 70일 동안 살았다. 수명이 16% 정도 늘어난 결과이다. 한국인의 기대 수명이 85.3세인데, 97.4세로 12년 늘어나는 셈이다.
연구진은 인간 세포가 벌거숭이두더지쥐 버전의 cGAS를 생산하도록 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전자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는 무기를 갖췄기 때문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같은 효소 복합체는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잘라 편집할 수 있다. 또 코로나 백신에서 입증된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술은 유전정보를 인체에 전달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
유전자를 변형하지 않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마오 교수는 또 다른 접근법으로 인간 cGAS 단백질과 만나 그 기능을 벌거숭이두더지쥐 버전으로 바꾸는 소분자 약물을 찾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 로체스터대의 베라 고르부노바(Vera Gorbunova)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에 같이 실린 논평 논문에서 “이번 연구가 cGAS가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약물이나 유전학적 방법으로 cGAS의 활성을 조절하는 것은 건강과 수명에 유익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과학자들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장수 비결을 잇따라 밝히고 있다. 칼리코 연구진은 2018년 국제 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죽을 때까지 늙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칼리코의 로셸 버펜스타인( Rochelle Buffenstein) 박사 연구진은 미국 벅 노화연구소에서 지난 30년 동안 키운 벌거숭이두더지쥐 3000여 마리의 사육 기록을 조사했다. 그 결과 생후 6개월부터 평생 1일 사망 위험률이 1만 마리당 1마리꼴로 거의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칼렙 핀치(Calebt Finch)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이라이프 논평 논문에서 “나이가 들어도 사망 위험률이 높아지지 않는 포유동물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1825년 영국 수학자 벤저민 곰페르츠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30세 이후 8년마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률이 두 배씩 증가한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곰페르츠 법칙에서 벗어난 첫 사례다. 칼리코 연구진은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번식이 가능할 정도로 성숙하는 데 걸린 시간의 25배가 흘러도 사망 위험이 커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간이 12세에 육체적으로 성인이 된다면 300세에도 늙지 않는 셈이다.
벌거숭이두더지쥐가 극한 조건에서 터득한 장수 비결은 또 있다. 독일과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공동 연구진은 2017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산소가 완전히 사라진 환경에서 포도당 대신 과당으로 에너지원인 아데노신삼인산(ATP)을 만들어 생존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사람은 산소 없이 살 수 없다. 우리 몸이 포도당을 분해해 ATP를 얻는 데 산소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당은 산소 없이 분해돼 ATP를 만들 수 있다. 덕분에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산소 농도가 평상시(21%)의 4분의 1인 5%로 줄어도 5시간을 견딘다. 산소가 완전히 사라지면 의식을 잃고 신체 활동이 거의 멈추지만 18분간은 생명을 부지한다. 산소를 다시 공급하면 아무 이상 없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로체스터대의 베라 고르부노바 교수는 앞서 2023년 히알루론산이라는 분자가 벌거숭이두더지의 장수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히알루론산은 수분을 끌어당겨 피부가 촉촉하고 탄력을 유지하도록 한다.
노화 연구의 석학인 미국 앨라배마대의 스티븐 어스태드(Steven N. Austad) 석좌교수는 지난 2022년 본지 인터뷰에서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히알루론산은 사람과 달리 분자가 아주 크다”며 “고분자량 히알루론산을 생산하는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유전자를 생쥐 세포로 옮겨주면 똑같이 접촉 저해(contact inhibition)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접촉저해는 다른 세포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세포의 복제를 멈추게 만드는 능력이다. 세포가 과도하게 증식하는 것을 막아 암 발생을 방지한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이런 접촉저해가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땅 속 작은 동물이 인간 장수 시대를 열어줄 날이 다가오고 있다.
참고 자료
Science(2025),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p5056
bioRx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5.04.539405
eLife(2018), DOI: https://doi.org/10.7554/eLife.31157
Science(2017),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n1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