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해결 위 의미있는 조치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입장을 급격하게 선회한 직후,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학살을 멈추라”고 압박했다.
24일(현지시각) NBC와 러시아 모스크바타임스 등에 따르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유엔 총회가 열리고 있는 뉴욕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약 50분간 회동을 가졌다. 미 국무부는 회동 직후 짤막한 성명을 내고 “루비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학살 중단’ 요구를 재차 강조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 가능한 해결을 위해 러시아가 의미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기존과 완전히 다른 입장을 내놓은 직후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개월간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위해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넘겨야 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2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난 뒤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는 정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군사·경제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며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지원이 있다면 우크라이나가 전쟁 이전 국경을 모두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왜 안 되겠나?”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를 ‘종이 호랑이’에 비유하며 군사력을 깎아내렸다. 이어 나토 동맹국 영공에 진입하는 러시아 항공기를 격추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ABC 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꿨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난 뒤 미국 정보기관 분석이 우크라이나 측 판단과 더 비슷해졌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입장 변화를 즉각 환영했다. 그는 이날 유엔 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만남을 가졌다”며 “유럽이 진정으로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고, 당연히 미국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동시에 “국제기구는 너무 약하다. 오랜 군사 동맹 일원이라는 사실만으로 안전이 자동 보장되지는 않는다”며 나토를 향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안보를 보장하는 것은 “친구와 무기뿐”이라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가 몰도바를 위협하고 있고, 유럽이 벨라루스와 조지아에 이어 몰도바까지 잃을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율 드론 개발 경쟁을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군비 경쟁”이라고 비판하며 국제 사회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반면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 말만 들은 것 같다”며 “우리는 그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러시아는 ‘종이 호랑이’가 아니라 ‘곰’”이라고 반박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루비오 국무장관과 회동 뒤 기자들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수사(레토릭)를 넘어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이 대러시아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루비오 장관은 전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러시아가 평화적 해결에 관심이 없다고 결론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