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외국인’ 넘어 서류 미비자 전반 단속 확대
한인사회, 심리적·경제적 압박 가중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범죄 이력과 상관없이 서류 미비자(불법체류자)는 누구든 체포·추방 대상이라는 ‘무관용 원칙’을 공식화했다. 최근 한국인 300여명을 체포한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공장 단속 역시 이 원칙에 따른 ‘부수적 체포’였음을 시사했다. 조지아주 경제 성장을 이민자들이 이끌고 있다는 분석에도 트럼프 행정부 강경 이민 정책이 속도를 내면서, 현지 한인 사회를 포함한 이민자들은 심리적·경제적 압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각) ICE 조지아 지부 린제이 윌리엄스 공보관은 현지 언론 서배너 모닝 뉴스 인터뷰에서 강화된 단속 기준을 명확히 밝혔다. 그는 “당신이 단지 불법으로 미국에 있다면, 당신이 졸업생 대표든, 의사든, 변호사든 상관없이 ICE에 발각되면 체포 및 추방 절차에 처하게 된다”고 했다.
이는 과거 ‘중범죄 이력’이 있는 불법체류자를 우선 단속하던 기조에서 완전히 벗어나, 체류 신분 자체를 유일한 단속 기준으로 삼겠다는 선언이다. 비영리 언론 마셜 프로젝트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ICE가 체포한 12만명 중 3분의 2는 범죄 기록이 없었다.
이런 기조는 지난 4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급습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당시 단속 영장에 명시된 표적은 4명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포한 475명 대다수는 영장과 무관한 ‘부수적 체포(collateral encounters)’ 대상자였다. 윌리엄스 공보관은 “우리는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을 못 본 척하지 않을 것”이라며 ‘싹쓸이’ 단속을 인정했다.
ICE의 무관용 원칙은 조지아주 경제 현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조지아 예산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조지아에 거주하는 이민자 130만명은 주 전체 일자리 가운데 약 15%를 담당한다. 이들은 주로 건설, 농업, 임업에 종사하며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 특히 현대차 공장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조지아에서 이민자 노동력은 필수다.
이민자 관련 비영리단체 다니엘라 로드리게스 사무국장은 “조지아주 산업 중심지 곳곳에서 대규모 건설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호텔을 짓고, 식당에서 일하고, 호텔을 청소하는 사람들 모두 이민자”라고 말했다. 이들을 추방할 경우 조지아주는 약 9억 2900만 달러(약 1조 2800억원)에 달하는 세수 손실을 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민자에게 경제를 의존하면서, 이들을 솎아내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화된 단속은 이민자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조지아주 채텀 카운티에서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ICE에 구금된 인원은 124명으로 지난해 전체 구금자 수(35명) 대비 3배를 훌쩍 넘었다.
조지아주 히스패닉 커뮤니티는 ICE 단속에 대한 우려로 매년 열던 히스패닉 문화유산 축제를 취소했다. 지역 비영리단체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이전보다 7배나 많은 하루 15~20통씩 쏟아지고 있다. 서배너 모닝 뉴스는 관계자를 인용해 “보통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체포되는 경우가 많다”며 “남겨진 가족들이 음식과 기저귀 등 기본적인 생필품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포는 아이들에게까지 파고들었다. 시민 단체 관계자는 서배너 모닝 뉴스에 “동급생들로부터 ‘너희 가족을 ICE에 신고하겠다’는 협박과 괴롭힘을 당한 15세와 6학년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조지아주 기독교 단체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죄인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며 “주 정부나 타인이 개인의 존엄성을 짓밟을 권리는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