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10월 1일 멈출 위기
미국 민주당이 연방정부 예산안 처리를 거부하면서 정부 폐쇄, 즉 ‘셧다운(shutdown)’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오는 30일 자정까지 여야가 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하면 다음 달 1일부터 미국 연방정부는 필수 업무를 제외하고 사실상 멈춰 선다. 민주당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폐지한 건강보험 정책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22일(현지시각) 공화당은 ‘정치적 인질극’이라며 맞서고 있어, 합의 시한을 일주일 남겨 놓은 시점에서 셧다운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에서 셧다운은 대통령과 의회가 새 회계연도(매년 10월 1일 시작)가 시작되기 전까지 12개 연간 세출법안(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예산이 없어 정부 기관 운영이 중단되는 상황을 뜻한다. 말 그대로 정부 기능이 완전히 멈춰 선다.
셧다운이 닥치면 국방, 치안, 소방, 교도소, 항공 관제 등 국민 생명·안전과 직결된 필수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연방 기관 운영이 중단된다. 국립공원과 박물관이 문을 닫고, 여권 발급 같은 행정 서비스도 멈춘다. 연방 공무원 80만 여명은 당장 월급이 끊긴다. 이들은 강제 무급휴가에 들어가거나, 필수 인력으로 지정돼도 급여 없이 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예산에 합의할 시간이 부족하면 의회는 일단 현 수준으로 예산을 동결하는 ‘임시 예산안(Continuing Resolution·CR)’을 통과시켜 협상 시간을 번다. 현재 공화당은 아무 조건 없이 11월 21일까지 일단 정부를 지금처럼 운영하는 7주짜리 ‘깨끗한(clean)’ 임시 예산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건강보험 정책 복원 등 여러 요구사항을 덧붙인 4주짜리 임시 예산안을 역으로 제안하면서 맞서고 있다.
앞서 2013년 두 당은 공수가 바뀐 채 셧다운 대치 국면에 나선 전례가 있다. 공화당 내 강경파에 속하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당시 ‘오바마케어’ 폐지를 요구하며 17일간 셧다운을 주도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현 공화당처럼 ‘깨끗한 예산안’ 처리를 주장했다.
이번엔 민주당이 건강보험 정책 복원을 명분으로 셧다운을 불사하고 있다. 이런 역할 반전에 대해 공화당 리치 맥코믹 하원의원은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라며 “살면서 이렇게 황당한 주장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상황이 다르다”며 “그들(공화당)은 있던 것을 빼앗으려 했고, 우리는 빼앗긴 것을 복원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22일 워싱턴포스트는 민주당이 강경책을 쓰는 이유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헌법적 특권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인식이 당내에 팽배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대치 상황이 이어지면 셧다운이 현실로 닥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내로 민주당 지도부와 회동할 예정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일정을 두고 “그들(민주당)과 만나고 싶지만, (셧다운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어 그는 “나라가 한동안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며 셧다운 가능성을 직접 언급했다.
셧다운이 현실화하면 미국 경제에 즉각적이고 큰 충격을 준다. 2018~2019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발생했던 역대 최장 35일간 셧다운 당시, 미 의회예산국(CBO)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110억 달러(약 15조원) 감소했다고 추산했다.
정치 분석가 네이트 실버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민주당 전략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민주당이 트럼프 지지율에 가장 큰 타격을 줬던 ‘관세’ 문제 대신 ‘건강보험’을 선택했다”며 “공화당이 건강보험 문제에서 타협해버리면 민주당은 2026년 중간선거에서 중요한 공격 카드를 잃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셧다운에 대한 책임 공방도 불가피하다. 과거에는 셧다운을 주도한 쪽이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공화당은 이번에 민주당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민주당 책임론’을 부각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한 공화당이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며 ‘트럼프 셧다운’으로 규정하고 맞서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