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수술 앞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세요 [아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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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3. 오후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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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 보내는 편지>
이병욱 드림(대암클리닉 원장

수천 건의 수술을 하면서 재수술한 경우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애초에 제가 반대한 수술이었지요. 체력도 약하고 몸무게가 40kg도 채 되지 않는 75세의 할아버지 환자로, 저는 그 정도의 상황이면 하늘에 목숨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 아버지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제 아버지라면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수술해서 1년을 더 살거나, 수술하지 않고 반년을 사는 것. 오래 사는 것과 삶의 질은 분명히 다릅니다. 단순히 오래 사는 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건강관리를 잘 하면 100세까지 살 수도 있지만 아직은 75~85세가 평균 수명입니다. 그래서 노인 환자 수술을 할 때는 보다 신중해야 하고, 75세부터는 좀 더 신중을 기하는 편입니다.

“수술하면 환자가 너무 힘들 겁니다.”
“그래도 여한이 안 남도록 수술해주세요.”
“수술하면 환자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편히 계시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 환자의 상태는 무척이나 좋지 않았습니다. 몸무게가 30kg 후반으로 너무 쇠약해서 수술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들은 수술대 위에서 돌아가시더라도 여한이 없도록 수술을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제가 수술해주지 않으면 다른 병원에 가서라도 수술할 거라는 보호자들의 말에 할 수 없이 저는 수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차피 할 수술이라면 제가 직접 하는 게 나을 성싶었기 때문입니다.

수술하다 보면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한 눈에 드러납니다. 개복하니 이미 장기들은 탄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탄력이 떨어지면 수술 후에 유착이 잘 일어나고, 상처도 더디 아뭅니다. 겨우 봉합은 했지만 터질 가능성이 농후해 문합부(수술 때 절제 후 이은 부분)에 누공이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저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수술 첫날부터 많은 분비물을 쏟아내더니 급기야 이상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재수술한 다음에도 그 분은 한 달이나 더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수술이 능사가 아니라고 아무리 보호자를 말려도 꿈쩍 않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받을지 말지 결정하는 건 반드시 보호자가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수술하면 2년을 살고, 수술하지 않으면 1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고민해야 할 건 수술 후의 삶의 질입니다. 단순히 몇 달을 더 사는 게 의미 있는 일인지, 환자에게 좋은 결정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수술 후에 더 힘들거나 아파할 것 같으면 안 하는 편이 낫습니다.

“여한이 없게 수술을 해주십시오.”
이처럼 수술을 결정할 때의 판단 기준이 결코 보호자들의 ‘여한’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건 보호자들의 이기심일 뿐입니다. 수술은 인체의 균형을 인위적으로 완전히 깨어버리는 의료 행위이므로 그로 인한 득이 실보다 클 때 시행해야 합니다. 수술은 생각처럼 간단하지도 않고 마법도 아닙니다. 컨디션이 좋은 일반인에게도 힘든 일입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암 환자에게는 수술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체는 외부로부터 방어막이 잘 구축돼 있습니다. 수술하면 싹 낫게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 방어막만 침범해 망가뜨리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이때 인체는 극도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주치의가 수술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게 아닌 상황에서, 최우선 선택으로 수술을 고려하시면 안 됩니다. 모든 수술 앞에서 신중한 태도를 기하는 건, 환자의 생존과 삶의 질의 관점에서 결코 과한 것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수술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수술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술은 자주 하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 한번 할까 말까 합니다.
그러기에 더더구나 수술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수술을 앞두고 계신 암 극복한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외과계 선생님들이 수술을 잘하시고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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