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통일교와 신도정치연맹이 동성혼을 가로막고 있다."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제 혼인평등 컨퍼런스'에서 일본·뉴질랜드·한국 등 여러 국가의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국의 혼인평등 법제화 현황을 공유했다. 혼인평등법을 발의했던 정치인들은 일부 종교 세력이 여전히 동성혼 논의의 가장 큰 벽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지난해 10월 10일 시작된 '혼인평등 소송' 1주년을 맞아 열렸다. 당시 11쌍의 동성 부부가 동성혼을 불허하는 민법 조항들의 위헌 여부를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11건 중 9건이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이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지난 1년간의 변화를 돌아보고,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한 나라들의 경험에서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할 지점을 모색했다.
일본, 높은 찬성률에도 통일교 반대에 막혀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시카와 타이가 전 의원은 "일본에서는 2019년, 2023년, 그리고 올해에도 혼인평등 법안이 발의됐다"며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국민의 70% 정도가 동성혼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찬성률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은 한국보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높은 편이다. 2023년 일본의 FNN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1.0%가 동성혼 법제화에 찬성했으며 반대는 19.6%에 그쳤다. 동성 커플의 공적 지위를 인정하는 일본의 파트너십 제도는 지난 5월 기준, 530개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92.5%를 포괄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동성혼이 여전히 법제화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이시카와 전 의원은 '통일교'와 '신도정치연맹'을 지목했다. 그는 "동성혼에 대한 국민의 높은 찬성에도, 통일교가 동성혼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교는 일본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종교다. 앞서 2022년 9월 자민당은 통일교와 접점이 있었던 국회의원이 전체 소속 의원(381명)의 절반에 가까운 179명으로 조사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또 "신도정치연맹(神道政治連盟)의 영향도 있다. 신도정치연맹은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 건설을 표방하고 있다. 동성혼,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은 이러한 자민당 의원들로부터 자주 나온다"고 주장했다. 21일 기준 신도정치연맹은 홈페이지에 국회의원 중 205명(중의원 135명 참의원 70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뉴질랜드, 식민지 법 깨고 '혼인평등' 달성
뉴질랜드에서는 2013년 '결혼개정법(Marriage Amendment Act)'으로 성별과 성적지향에 상관없이 결혼이 허용됐다. 이 법안을 발의한 루이자 월 전 의원은 "태평양 국가들은 동성애를 범죄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뉴질랜드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며 영국의 성공회 교회 법률들이 강제됐고, 종교 교리에 의해 사랑과 존중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4년 시민결합법이 제정됐을 당시 "특정 교회에서 성소수자를 악마화하며 반대 운동을 벌였지만, 오히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뉴질랜드 시민들이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2012년 루이자 의원은 결혼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정당에 상관없이 실무팀을 만들었고, 각 정당 청년위원회, 연예인, 운동선수 등 다양한 인사들의 지지 선언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법안은 2013년 4월 의회에서 77대 44로 통과됐으며, 2023년 8월까지 약 4,100쌍의 동성 부부가 결혼했다.
한국, 제22대 국회에서는 혼인평등법 발의 '0'
한국에서는 제21대 국회에서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국내에서 최초로 '혼인평등법'을 포함한 가족구성권 3법을 발의했지만, 이후 관련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장 전 의원은 이날 "보수 개신교는 차별금지법이 결국 성경이 금지하는 동성혼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놀랍게도 이런 주장이 정치권 안에서도 유의미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성혼 법제화와 민주주의는 맞닿아있다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과 혼인평등법에 반대했던 보수 개신교 세력이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을 옹호했다"며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혼인평등법 제정에 한국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사회에 정교분리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며 "국회 조찬 기도회에는 국회의장을 포함해 유수의 정치인이 간다. 다른 종교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현재 제22대 국회가 출범한지 1년이 넘었지만, 차별금지법과 혼인평등 관련 법안이 단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이후 한 청중이 "종교 세력이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정말 크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루이자 전 의원은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동시에 종교의 책임이 있다"며 "종교집단이 특정집단을 악마화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계속해야 한다. 혐오표현을 제한하는 법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2012년 뉴질랜드 구세군은 동성혼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발언에 대해서는 반성한다는 성명(RAINBOW WELLINGTON AND THE SALVATION ARMY REACH A RAPPROCHEMENT)을 발표한 바 있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통일교는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보수 정치인에게 자금을 지원하면서 정책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성혼이 법제화된다고 해서, 모든 성소수자가 결혼하는 것은 아니다. 평등한 권리로서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더 많이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컨퍼런스는 무지개행동·모두의결혼, 그리고 이재정(더불어민주당), 용혜인(기본소득당), 신장식(조국혁신당), 손솔·정혜경(진보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