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재산이면 이혼 재산분할 제외? “가사재판 본질 바뀔 수도”

이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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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들 “대법원 법리 실무 적용 시 혼란” 전망
“재산 불법 여부 따지기 시작하면
가사재판 양상 완전히 바뀔 것...
부유층 재산분할 회피 논리 악용 우려도”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노태우 비자금'은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앞으로 이혼 재산분할에서 매번 자산의 합법성 여부를 따져야 하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이 실무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 1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1조3808억원대 재산분할을 명령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2심이 재산분할 주요 근거로 든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은 "뇌물"이니 기여도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민법 제746조(불법원인급여)의 취지가 재산분할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부부의 공동재산이 불법적인 자금으로 쌓은 것이라 해도, 이를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산 불법 여부 따지기 시작하면 가사재판 양상 완전히 바뀔 것...

부유층 재산분할 회피 논리 악용 우려도"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한국젠더법학회 이사)는 22일 여성신문에 "불법이냐 합법이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가사재판의 모습과 본질이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비자금은 법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는 대법원 판단에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이혼소송 과정에서 어떻게 살필 것인가. 애초에 불법/합법의 잣대로만 심사하는 게 가능한가. 대법원이 '불법'의 경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더 혼란스러워질 것 같다"고 했다.

또 "불법적으로 쌓은 재산이라 해도 그 재산을 유지·형성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경우가 많다"며 "오히려 부유층은 '내 재산은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재산분할을 회피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이현곤 법무법인 새올 변호사는 판결 직후 페이스북에 "역대 모든 이혼 사건에서 재산 형성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고 이를 분할 대상에서 제외한 적은 없었다"며 "이젠 모든 이혼 사건에서 재산 형성 과정의 합법 여부를 따져야 하나"라고 쓴 바 있다.

안지영 법무법인 가온 변호사도 "앞으로 이혼 재산분할 때마다 시댁이나 처가에서 받은 돈이 합법적으로 번 돈인지 아닌지를 매번 따져야 하느냐"며 "대법원이 정치적으로 판단해, 일반 사례에 적용하기엔 불합리한 법리를 지나치게 밀어붙인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평가했다.

한편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사건 파기환송심은 서울고법 가사1부에 배당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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