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18명 중 여성 2명…‘북유럽 수준’ 공약 못 지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민당 총재가 지난 21일 새 총리로 선출됐다. 일본에서 여성 총리가 탄생한 것은 1885년 일본에 내각제가 도입된 이후 140년 만에 처음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선출된 이후 곧바로 새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북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내각의 여성 비율을 높이겠다는 공약과 달리 여성을 2명 기용하는 데 그치면서 성평등 내각을 달성하기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의 첫 내각 각료 18명 중 여성은 가타야마 사츠키(66) 재무상과 오노다 키미(43) 경제안보상 등 2명이다. 다카이치 총리를 포함해도 전체 내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5.8%에 불과하다. 반면 다카이치 총리가 언급한 북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내각의 절반가량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내각의 여성 비율은 60%가 넘는다.
이에 로이터통신은 "다카이치의 승리는 여전히 남성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본 정치에서 중대한 변화를 의미한다"면서도 "그는 약속했던 것보다 적은 숫자인 2명의 여성만을 내각에 기용했다. 결국 노르딕(북유럽 5개국) 수준의 내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오츠카 요코 리쓰메이칸대학 정책과학대 교수는 로이터에 "여성 장관이 두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며 "여성 총리가 탄생했어도 일본의 성별 격차지수 순위가 소폭 오를 것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현실은 거의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디언도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되며 새 역사를 쓴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새 내각에 여성 각료를 단 두 명만 임명했다"며 "일본 정치에서 여성의 대표성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니시카와 신이치 메이지대학 정치경제학부 교수는 TBS에 "처음으로 여성 총리가 탄생했지만 여성의 등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적었다"며 "그만큼 당내 화합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첫 내각에서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맞붙었던 인사들을 주요 요직에 대거 중용했다. 대표적으로 다카이치 총리는 고이즈미 신지로(44) 전 농림수산상은 방위상으로, 하야시 요시마사(64) 전 관방장관은 총무상으로 발탁했다. 경쟁자들을 주요 보직에 임명하며 당내 결속에 나선 것이다. 이에 당내 융화가 현재로서 최우선시되면서 여성 기용이 뒷순위로 밀려났다는 진단이다.
유일하게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핵심 요직인 재무상에 가타야마 전 지방창생상을 기용한 점이 눈에 띄는 부분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서 여성 재무상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타야마 재무상은 1982년 재무성(당시 대장성)에 입성하며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재무성에서 예산을 담당하는 주계국의 주계관에 올라 일본에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등 다카이치 총리와 마찬가지로 우익 성향을 보이는 인사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외국인 정책과 경제안보를 담당하는 경제안보상으로 오노다 키미 참의원이 발탁됐다. 오노다 경제안보상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으로,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도쿄도 기타구 구의원을 거쳐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처음 당선됐다. 다카이치 총리와 마찬가지로 보수적 색채를 띄는 인물이다.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여성 각료가 2명에 그친 것과 관련해 "어디까지나 '기회의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