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안 고쳐도 가능한데”…임신중지약 허가 미루는 식약처, 국감서 도마에

신다인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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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이후 임신중지 의약품 불법판매 2,641건 적발
법률자문 6건 중 4건 ‘법 개정 불필요’…식약처 “관계부처 논의 중”
남인순 “여성들 불법 약물에 내몰려”
박주민 “허가를 미루는 것이 재량권 남용”
2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유경 식품안전의약처장이 발언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법 개정 없이도 임신중지 의약품을 허가할 수 있다는 법률 자문을 받고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도입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안전한 임신중지 약물이 도입되지 않아 여성들이 불법 유통약물과 부작용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남 의원은 "SNS와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는 정품 여부를 알 수 없는 (임신중지) 약이 수십만 원대에 거래되고, 복용법도 엉망"이라며 "유통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부작용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남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낙태죄 효력이 상실된 2021년 이후 임신중지 의약품 불법판매 적발 건수는 총 2,641건으로 집계됐다. 2024년 한 해에만 741건, 올해 9월까지 352건이 적발됐다.

실제 2022년에는 중국산 가짜 '미프진' 5만7천정(시가 약 23억 원 상당)이 적발된 바 있다. 남 의원은 "만약 정식 의약품으로 허가되어 의료기관 관리 아래 안전하게 복용이 가능했다면 이런 불법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일부 산부인과에서는 항암제 성분인 '메토트렉세이트(MTX)'를 임신중지용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남 의원은 "항암제기 때문에 독성이 강해 부작용이 864건 보고됐다"며 "만약 미프진이 정식 도입됐다면 여성들이 항암제까지 맞아가면서 임신중지에 내몰렸겠냐. 책임의식을 못 느끼냐"고 했다.

이어 남 의원은 "식약처로부터 보고받은 바로는 2021년부터 법 개정 없이도 허가 가능하다는 법률 자문을 여러 번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품목 허가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위법이라는 내용도 법률 검토에 있었다"고 했다.

'미프진(mifegyne)'은 WHO와 미국 FDA에서 그 안정성을 인정받은 대표적인 임신중절 유도약이다. ⓒpixabay


지난 2021년부터 올해 1월까지 현대약품은 식약처에 임신중지약품인 '미프지미소(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 네 차례 품목허가 신청했지만, 유통이 허용되지 않았다. 지난달 21일 남 의원이 식약처에서 받은 답변 자료에 따르면, 식약처는 "법률상 근거가 마련되고 현대약품이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 신속히 심사를 속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 개정과 상관없이 임신중지약품 도입은 가능하다. 이미 식약처는 관련 법률 자문을 마쳤다. 남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법률자문서에 따르면, 식약처는 "법 개정 여부와 무관하게 인공임신중절 의약품의 품목허가는 가능하며, 이에 따른 수입 및 유통 또한 합법적"이라는 자문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법률자문서에는 "품목허가를 거부할 근거가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 거부 처분은 위법에 해당한다"는 의견과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허가를 거부하는 것은 재량권의 일탈·남용 소지가 있다"는 판단도 제시됐다.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남 의원은 "SNS와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는 정품 여부를 알 수 없는 (임신중지) 약이 수십만 원대에 거래되고, 복용법도 엉망"이라며 "유통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부작용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회TV 캡쳐


식약처는 여전히 법 개정 이후 의약품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오유경 처장은 "(임신중지 약물 도입이) 국정과제로 포함된 만큼, 관계부처와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며 "관계부처가 법을 개정하고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월 이재명 정부는 123대 국정과제에 '임신중지 약물 도입'과 '임신중지 법·제도 추진'을 명시했다.

이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박주민 의원은 "오히려 허가를 미루는 것이 재량권 남용이다.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경고 내용의 법률 검토가 6건 중 4건이었다. 처장의 의지만 있었으면 (도입) 하는 게 맞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법률개정 등 제도개선을 위해서 TF팀이 만들어져서 논의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신속하게 진행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해야 한다.

한편,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안전한 임신중지'의 방식이다. WHO는 2005년 임신중지의약품 '미프진(Mifegyne)'을 핵심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했고, 지난해 기준 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대만, 일본 등 세계 약 95개국에서 보건당국의 허가 아래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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