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긴급행동 집회 연대자 ‘서염’
제21대 국회의원이자 작가, 감독으로 활동해온 장혜영 전 의원이 여성신문에 월간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가 직접 만나고 대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한국 사회의 풍경을 다시 비춥니다. [편집자주]
종로와 광화문 일대는 대한민국 '집회 1번지'다. 여기서는 응원봉 집회나 태극기 집회처럼 아주 큰 집회도 있지만 작더라도 꾸준히 열리는 집회도 있다. 그런 집회 중 하나가 바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다. 289개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2023년 10월 7일부터 격주로 열어온 집회가 10월 18일에 52차 집회를 열며 2년을 맞이했다. 그다음 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에 불안하나마 극적으로 1단계 휴전 협정이 타결되었다.
지난 2년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상황은 살아있는 지옥도에 비견되었다. "사람들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마지막 생명줄이 무너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구호품 전달을 비롯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차단한 지난 7월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발표한 성명의 일부다. "가족을 위해 식량을 구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고 살해하거나 부상을 입히는 일을 포함한 지속적 폭력을 강력히 규탄한다"고도 했다.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살상은 일상이 되었고 인도적 지원을 위해 현장을 찾은 다른 국적의 의료진과 언론인도 목숨을 잃었다.
의도적 집단 기아로 인한 학살을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한국 사회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광복 80주년, 한국의 주류 정치는 'AI 경쟁'이나 'K-컬처', 방산 수출의 수식어로 '글로벌'을 강조할 뿐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가장 일방적인 집단학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 불평등한 침묵을 깨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꾸준히 연대의 목소리를 전해온 것은 격주로 종로에서 열린 시민사회 주최의 작은 집회다. 이 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온 연대자의 한 사람인 '서염'을 만났다. 공연예술을 공부하는 관객이자 20대 후반의 여성인 서염은 어떻게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집단 학살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연대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세계가 이럴 수 있지.' 서염의 연대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과 이에 따른 보복 공습으로 단 며칠 만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간 바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그 전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목회자였고 스스로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으며 이스라엘에 관해 친숙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당혹스러운 것은 근현대사를 배우면서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땅에 이스라엘이 갑자기 '나라'를 세웠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황당했다. 하루아침에 살던 땅에서 쫓겨나고 장벽에 갇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 식민지배의 아픔을 가진 나라의 후손으로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어쩌면 친구의 죽음 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서염은 회상한다. 가자지구 집단학살이 시작되던 초기, 좋아하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무척 좋아했는데 친해지지 못한 채 영영 헤어지게 되었다. 친구의 죽음은 이 세상의 죽음 그 자체를 생각하게 했다. 지금 사망자 숫자로 건조하게 전해지는 저 사람들도 분명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일 텐데. 그 수많은 친구의 죽음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기묘한 연결감이었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집회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하마스의 초기 기습 이후 가자전쟁의 양상은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집단학살에 가까웠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 중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점령 및 학살을 '하마스의 테러 행위'로 합리화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불편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 의사를 일본 일각에서는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지만 한국에서는 애국지사로 추모하지 않는가. 집회에 다녀왔다는 말에 '나는 아직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은 참 멀게 느껴졌다. 물리적 거리감은 심적 고립감을 증폭시켰다. 비슷한 슬픔과 분노로 모인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싶었다. 내향인임에도 격주 집회에 열심히 참여하게 된 이유다.
서염이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의 핵심 메시지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모두의 해방이다"라는 구호다. 피상적인 얘기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느낀다. 다중복합위기의 시대, 정말로 우리의 해방은 서로의 해방에 연결되어 있다. 군인들에게 원하는 경우 비건음식과 비건 군용화를 제공한다며 '비건 워싱'을 하는 이스라엘군을 보며 서염은 생각했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어떻게 같은 인간을 집단학살할 수 있는가. 이 모순을 마주하지 않고서 우리가 어떻게 진정으로 해방될 수 있는가. 평화로울 수 있는가.
이런 얘기를 하며 집회에 참가하면 늘 팔짱을 낀 채 흘겨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가끔 누군가는 면전에 이런 말을 던지고 간다. "니가 팔레스타인인이야?" "가까이 있는 한국 사람들부터 신경 써도 모자랄 판에." 팔레스타인이 멀리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갸웃하게 된다. 이렇게 말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과연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에는 신경 쓰고 있을까. 물론 한국에도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차별하는 사람들은 하나만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듯 연대하는 사람들도 하나만 연대하지 않는다. 서염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최대한 여러 현장에 연대하고 있다.
서염에게 '내가 팔레스타인이다'라는 구호는 양가적이다. 물론 우리 모두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갇혀 있지 않다. 굶고 있지 않다. 우리 머리 위에는 포탄이 떨어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누구보다 안전한 곳에서 '내가 팔레스타인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이 간극을 서염은 절절히 느낀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이지만 동시에 결코 팔레스타인이 아니다. '내 일이 아닌 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내 일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서염이 마음 한가운데에 품고 있는 묵직한 화두다.
해초 활동가는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였다. 해초가 유서를 쓰고 '가자로 향하는 천 개의 매들린호'에 구호품을 싣고 떠났을 때, 그가 남긴 메시지에 전율했다.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갔을 뿐." 그것이 본질이었다. 세계는 풍요롭지만 어떤 곡식들은 일부에게 가고 다른 어떤 곳에는 결코 닿지 못한다. 없어서가 아니라 일부러 주지 않기 때문에. 서염은 애써 가자에서 일어나는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을 외면하는 주류 한국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해초의 직접행동을 '씨앗 뿌리기'라고 묘사한다. '가지 말라는 곳을 왜 가냐'는 식의 비난도 쏟아지지만 그 전에는 '하마스는 강간범'이라는 식의 맥락 없는 일반화만 떠돌았다. 해초의 행동으로 우리 사회와 가자 지구의 관계는 달라졌다. 이것은 더 많은 변화의 씨앗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서염은 역사에 관해 말했다.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나 이 문화 안에서 성장한 사람으로서 바로 이곳에서 무엇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연극을 통해 만나는 세상을 잘 읽어내고 싶어 정치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도 했다. 전쟁과 집단학살의 시대, 우리의 세계가 이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 우리가 다른 것을 취할 가능성에 대해 그는 이야기했다. 푸코를 공부하며 접한 이 가능성을 곱씹으며 최근 집회 실무팀에 들어갔다. 다른 세계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무언가 아주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종로의 팔레스타인 연대 긴급행동 집회에는 인류가 스스로 빚어낸 참극을 똑바로 바라보며 역사의 다른 가능성을 제 손으로 싹틔우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다른 역사의 가능성을 품은 씨앗은 이미 우리 각자의 집에, 학교에, 사무실에, 길거리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싹을 틔우기로 결심하고 물과 바람과 햇빛을 주는 우리의 행동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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