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2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렸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양국 간 경제·통상 분야의 안정화, 동맹 관계의 현대화, 새로운 영역의 협력 방안 개척 등을 논의했다.
미국 언론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언론들도 두 정상의 회담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에다 회담 첫 부분이 전 세계 언론에 실시간으로 공개된다는 점에서 백악관 회담은 항상 관심을 받아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쫓겨나는 모습이 전세계에 생중계됐고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가 대통령도 공개적인 망신을 당했다.
외신은 회담의 내용과 함께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회담 외적인 면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미국의 전문가들과 세계의 언론들은 이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첫 만남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선제공격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2시간반 가량 앞두고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Purge or Revolution)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라며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고 밝혔다.
"우리는 그것을 수용할 수 없고, 거기서 사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상황을 '숙청' 또는 '혁명'이라고 언급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새 대통령(이재명 대통령)을 오늘 백악관에서 만난다"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어 감사한다"고 썼다.
'숙청' 또는 '혁명' 언급은 한국내 내란 특검 수사와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수사 및 재판에 대한 언급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직전 이 같은 '폭탄 발언'을 내놓은 것은 트럼프 핵심 지지층 내 일부 강성 인사들의 인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탄핵 반대 진영과 소통해온 강경 반중(反中) 성향의 고든 창 변호사는 전날 밤 SNS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 제발 이재명(대통령)에게 그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고 말해주세요"라며 "한국의 애국자들, 이제는 한덕수를 보호해야 할 때"라고 썼다.
창 변호사는 이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숙청 또는 혁명'을 언급한 SNS 글에 대한 댓글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 수사기관들의 교회와 오산 미군기지 압수수색에 대해 "사실이라면 너무 나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및 기타 의혹과 관련해 특별검사의 독립적인 수사 절차라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오산 공군기지의 미군 시설을 목표로 했던 것이 아니라 한국 공군 시설이 수사 대상이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오해가 있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 전문가들 "첫 단추 잘 끼웠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양국의 동맹 관계를 확인한 계기가 됐다고 긍정 평가하면서도 무역·안보 분야에서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연합뉴스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아침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비판한 뒤 불안한 출발이었지만, 두 정상은 웃었고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듯이 보였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극찬했다. 이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관세 위협 없이 지난달의 관세 합의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한미 양측 모두 이번 회담이 양국 동맹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대사 대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침 트루스소셜 글로 우려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정상회담은 잘 진행됐다. (두 사람의) 대화와 몸짓은 긍정적이고 우호적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하고 핵심적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아꼈으며,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주재로 트럼프와의 대화를 끌어냈다"고 분석했다.
랩슨은 "관세, 투자, 안보 같은 민감한 사안은 이후의 오찬 및 비공개 회의에서 논의하기로 양측이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미 스탠퍼드대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 신기욱 소장은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다. 회담 전에 '교회 압수수색' 등 긴장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잘 풀었다"라고 밝혔다.
신 소장은 "워싱턴DC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반미, 친중, 친북 등의 편견이 있었는데 부드럽게 잘 불식시킨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나이스하게 접대를 잘해 준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신소장은 "이것으로 끝이 아닐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특성상 처음에 나이스하게 해주고 실익을 챙길 수 있다. 앞으로 트럼프가 가진 카드가 뭔지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매복공격 없었다"
영국의 BBC는 이날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을 실시간으로 속보로 전했다.
BBC는 미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언론 공개 일정이 큰 돌발상황 없이 무사히 마무리됐다고 보도했다.
BBC는 "한국 대표단은 언론 공개 일정이 마무리 된 지금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불과 3시간 앞두고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렸을 때 "(한국 대표단은) 자신들이 지뢰밭이나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측의) 매복 공격은 없었다"고 전했다.
외국 지도자가 오벌 오피스(백악관 집무실)에 들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결코 예측할 수 없다.
올해 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경험했듯이,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지도자들은 과거에 비공개로 진행되던 긴장된 논의와 논쟁이 대신 세계의 카메라 앞에서 벌어질지 궁금해한다.
BBC는 이 대통령은 오늘 그 운명을 피했으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의 공개 부분을 긍정적인 분위기로 마무리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한미 경제 및 안보 관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라고 보도했다.
"그 게시물과 그가 이전에 한국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트럼프의 말대로, 그가 '잠재적인 오해'와 '소문'을 명확히 하기 위한 시도 이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BBC는 분석했다.
BBC는 "한국 내각의 일부 구성원들은 해당 게시물이 협상 전략이었다는 추측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백악관은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이 끝난 뒤 두 정상이 엄치척 하면서 찍은 사진을 X에 공개했다.
아첨 전략
워싱턴포스트(WP)는 회담 분위기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WP는 이 대통령이 오벌 오피스 리모델링과 세계 평화를 위한 노력,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최고치 기록 등을 언급, 트럼프 대통령에 찬사를 건넸으며 북한과의 대화를 요청하면서 "북한에 트럼프월드도 지을 수 있게 해달라"고 농담해 훈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전했다.
이어 "트럼프와 한국의 새 대통령은 피살 위험에서 살아남는 등 여러 공통된 경험을 가졌다"면서 "이번 정상회담은 두 지도자가 첫 만남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WP는 회담 전인 이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의 SNS 게시글과 관련, 이 대통령이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처럼 "궁지에 몰릴 수 있다"고 예측한 바 있다.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및 JD밴스 부통령과 언쟁을 벌인 후 광물협정 서명식과 공동 기자회견이 취소된 채 백악관을 떠나야 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회담전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게시물 때문에 한국과의 협상이 파탄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지만 회의중 긴장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매우 좋은 인물"이라고 칭찬했다.
"이는 이 대통령과 한국 대표단이 정상회담 전 긴장을 해소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이 무역과 투자 협정을 잘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협정에는 미국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포함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은 월요일 북한 문제, 공동 안보, 선박 건조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제품에 15% 관세를 부과하는 협정은 변동 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원칙을 지켰다"며 "그들은 합의한 대로 협정을 이행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BBC는 이 대통령이 아첨 전략(trategy of flattery)이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좌파 정치인인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 트럼프의 가장 큰 우려를 자극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미국 동맹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고 밝혔다. 일부 미국 보수 논평가들은 그를 '반미주의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과거 그는 한반도에 주둔해 북한으로부터의 방어를 돕는 수만 명의 미군 병력으로부터 한국이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또 한국의 국방비 지출과 미국과의 무역 흑자에 대해 비판해 왔다.
회담전 트럼프의 폭탄게시물은 한국 관료들에게 악몽 같은 시나리오였다.
BBC는 이 대통령의 아첨 전략은 분명히 통했다. 그는 먼저 오벌 오피스의 밝고 아름다운 새 모습을 칭찬한 뒤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구축한 개인적 유대 관계를 칭찬했다.
이 대통령 협상팀의 최우선 목표는 그가 트럼프의 호감을 얻은 채 오벌 오피스를 떠나도록 하는 것이었다라고 BBC는 전했다.
블룸버그는 "반도체와 배터리 등 경제와 미래 성장의 핵심 분야에 대한 향후 관세 부과 위험에도 여전히 노출되어 있다. 회의 전까지 이 대통령이 협상 세부 사항을 변경할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한국 관료들은 오히려 무역 협상에서 대부분 보호된 국내 농업 분야에 대한 재협상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 더 우려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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