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넘어 정치·경제적 영향력 행사
'21세기 팝 아이콘'으로 불리는 테일러 스위프트(35)가 돌아온다. 최근 테일러는 정규 12집 '더 라이프 오브 어 쇼걸(The Life of a Showgirl)'의 커버를 공개하며 귀환을 알렸다. 지난 13일(현지시간)에는 팟캐스트 '뉴 하이츠'에 출연해 "새 앨범이 10월 3일 발매된다"며 "이번 앨범은 활기차고, 짜릿하며 생동감 넘쳤던 투어 기간 중 내면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신기록을 써 내려간 테일러가 이번에도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을지 또한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1989년 펜실베이니아주 레딩에서 태어난 테일러는 어린 시절부터 가수를 꿈꿨다. 본격적으로 컨트리 음악에 매진하기 위해 테일러와 그의 가족은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테네시주 내슈빌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2006년 테일러는 데뷔 앨범 '테일러 스위프트'를 발매하며 컨트리 음악계의 혜성으로 떠올랐다. 2008년 발매된 두 번째 앨범 '피어리스(Fearless)'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연소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며 가수로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이후 발매된 3집 '스피크 나우(Speak Now)', 4집 '레드(Red)' 역시 큰 사랑을 받았으며 2014년에 발표된 5집 앨범 '1989'를 통해 컨트리 음악에서 팝 음악으로 완벽히 전환한다.
테일러는 데뷔 때부터 큰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전곡의 작사·작곡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평가 받았다. 특히 20대 초반까지 연애와 우정을 비롯해 10~20대 여성의 경험과 감정을 다뤘다는 이유로 종종 가사가 유치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부 비판의 목소리마저 잠재우는 기념비적인 앨범이 발매되는 데, 바로 8집 '포크로어(folklore)'다. 포크로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신음하던 2020년 별다른 홍보도 없이 기습 발매됐다. 테일러는 포크 장르의 음악로 앨범을 가득 채웠으며, 시와 소설을 읽는 듯한 가사를 선보이며 싱어송라이터로 한층 성숙한 모습을 선보였다. 평단과 대중까지 사로잡은 이 앨범은 테일러 디스코그래피 중 최고작으로 꼽힌다.
이후 코로나 종식과 함께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한 '디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로 전 세계에서 1천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테일러는 21세기를 대표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21개국의 51개 도시에서 진행된 디 에라스 투어는 20억달러(약 2조 7668억원)가 넘는 티켓 매출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공연이 진행된 도시의 지역 경제까지 부흥시키며 '테일러노믹스(테일러와 경제의 합성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23년 올해의 인물로 테일러를 선정하며 "계층과 취향이 갈라진 오늘날 우리 모두가 향유하는 마지막 문화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음악산업 내 성차별과 싸운 페미니스트
테일러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음악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음악산업 내 만연한 여성혐오와 싸워온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테일러는 연애를 한다는 이유로 줄곧 '남성편력이 심하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테일러는 과거 CBS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항상 '그녀가 자신의 모든 곡을 직접 썼을까'라고 의심한다. 사생활과 연애 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며 "음악산업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어휘를 사용한다. 남성이 무언가를 하면 '전략적'이라 하지만 같은 행동을 하는 여성에게는 '계산적'이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곡 '더 맨(The Man)'에서도 이 같은 음악산업 내 성차별을 고발했다.
테일러는 다른 여성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외모와 몸매 품평에 시달렸다. 그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Miss Americana)>에서 "배가 나와 보이는 사진을 보거나 누군가 임신한 것 같다고 말하면 적게 먹거나 굶었다. 쇼 중간 혹은 쇼가 끝나면 기절할 것 같았는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음식을 먹으면 에너지가 생기고 강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사람들이 살이 쪘다 말해도 인생이 나아졌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테일러는 자신을 성추행한 라디오 방송국 DJ 데이비드 뮬러와의 법정 싸움에 휘말리기도 했다. 2013년 뮬러가 테일러와 사진을 찍던 중 그의 치마 밑에 손을 넣고 엉덩이를 움켜쥔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테일러는 이 같은 사실을 바로 알렸으며, 라디오 방송국은 자체 조사를 진행한 끝에 뮬러를 해고했다. 하지만 2년 뒤 뮬러는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며 테일러를 상대로 300만달러(약 41억 6190만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테일러의 허위 주장으로 자신이 부당하게 직장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테일러는 맞고소하며 뮬러에게 '1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테일러는 승소했으며 2017년 미투(#MeToo) 운동을 주도한 애슐리 쥬드 등과 함께 타임의 올해의 인물 '침묵을 깬 사람들'로 선정됐다. 테일러는 비슷한 일을 겪은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내가 과민반응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절대 스스로를 탓하면 안 된다"며 "성폭력을 신고하는 데 15분, 15일, 15년이 걸리든, 가해자가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피해자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침묵깨고 정치적 발언 나서
이 사건은 테일러가 정치적 발언이 금기시된 컨트리 여가수의 불문율을 깨고 당당하게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계기가 됐다. 컨트리 음악은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백인 남성을 주요 팬층으로 삼는데, 이에 2003년 여성 컨트리 밴드 딕시 칙스가 이라크 침공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살해 위협을 받는 등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처럼 컨트리 음악을 하는 여가수가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테일러 역시 12년간 정치와 거리를 뒀다. 하지만 테일러는 2018년 침묵을 깨고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 투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남녀동등임금법과 여성폭력방지법 연장에 반대표를 던진 후보에 투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019년에는 성소수자(LGBTQ+)의 권리를 지지하는 곡 '유 니드 투 캄다운(You Need to Calm Down)'을 발표했으며, 이듬해인 2020년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테일러는 "유색인종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대표성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통령, 여성이 자신의 몸에 관한 선택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통령,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포용돼야 한다는 것을 아는 대통령이 선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테일러는 지난해 치러진 대선에서도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에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지만 테일러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 광고에 출연해 논란에 휩싸인 배우 시드니 스위니를 옹호하기 위해 또다시 테일러를 향해 "더 이상 핫하지 않다"고 공세에 나섰다. 이에 음악잡지 롤링스톤은 테일러가 앨범의 마스터권을 되찾은 사실을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미안하지만 테일러의 커리어는 여전히 핫하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 역대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라고 설명했다. 테일러의 위상을 짐작하게끔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