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되어 전하는 선감학원 소년들의 이야기 [시선]

박미소 기자
입력
수정 2025.10.23. 오전 7:34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이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이 헛되지 않고 미래의 아이들을 지키는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선감학원 추모제가 열린 9월27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학원 옛터에서 피해 생존자 김영식씨(70·왼쪽)와 김윤선씨(66)가 만나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두 노인이 손을 잡고 오르막길을 걸어갔다.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 김영식씨(70)와 김윤선씨(66)가 서로를 알아봤다. “말투가 그대로네, 너 별명이 맴맴이었잖아. 선감도 나와서는 인천 연안부두 앞 횟집에서 회 뜨는 거 배우지 않았냐.” 50년도 훌쩍 지난 기억이 둘 사이를 오고 갔다.

9월27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학원 옛터에서 ‘선감학원 추모제’가 열렸다. 선감학원은 1946년부터 1982년까지 경기도가 운영한 아동 강제수용소다. 아동 5759명이 거쳐 갔다. 대부분 7~17세였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강제노역과 폭행, 굶주림, 성폭력에 시달렸다. 희생자 시신 150여 구가 암매장됐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은 원생 당시 다니던 옛길을 걸었다. 선감나루터를 지나, 뱃사공이 머물던 집에서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쌀자루와 연탄을 한아름 안고 나르던 ‘눈물고개’로 올라갔다. 그 고개 중턱의 축사 터 앞에서 이주성씨(65)가 걸음을 멈췄다. 축사 옆에서 생활하며 돼지 새끼를 받아내는 일을 했던 이씨는 14살 때 이곳에서 목을 매달아 죽으려 했다. “지옥에 가더라도 이곳에서 보낸 5년보다 낫다 생각했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선감학원 옛터 전경. 오른쪽 산길 바로 아래에 옛 식당과 숙소, 축사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시사IN 박미소
이주성씨(65)가 돼지 축사 터 옆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고 류규석씨의 아내 장인례씨(72)가 위령제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고인이 된 류씨는 초대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시사IN 박미소


한 시간 남짓, 오래됐지만 선명한 기억들이 그 길 위에 흘러나왔다. 소년들이 맨손으로 땅을 파서 심은 소나무와 밤나무 씨앗은 이제 울창한 숲이 됐다. 노인이 된 소년들은 자신이 일궈낸 숲 앞에서, 먼저 간 친구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냈다.

제사상 앞에서 초대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을 지낸 고 류규석씨(1955년생)의 아내 장인례씨(72)가 눈물을 흘리며 절을 했다. 생전 그의 가게에서 두세 명이 모이던 자리에 이제 300여 명이 함께한다.

위령제를 마친 후 피해 생존자들이 손을 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극단 소년단원 천종수씨, 최인복씨, 박성기씨(왼쪽부터)가 리허설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추모 문화제에서 대부초등학교 6학년 이유람 학생이 당시 선감학원 원생들이 입었던 옷을 입고 선감학원 원생 동료들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피해 생존자들이 편지 낭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피해 생존자들이 ‘나의 살던 고향은’을 부르는 싱잉엔젤스 합창단의 공연을 바라보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이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왔다. 9월12일, 법무부는 피해 생존자들이 낸 국가배상 소송에 대한 상소를 취하하고 포기했다. 지난 8월에는 피해 생존자들이 대통령실 앞에서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동시에 이주성씨는 발굴된 유해 187기를 선감학원 공동묘역이 아닌, 10평 남짓한 공동묘지에 안치하겠다는 계획에 반발하며 1인 시위에 나섰다. 경기도는 9월27일 추모제 당일에 열린 피해 생존자와의 간담회에서 기존 안치 계획을 철회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추모제에서 이 여정을 담은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극단 소년단원 박성기씨(60)가 류규석씨가 되어 말했다. “다른 동무들의 몫까지 잘 살아줘. 우리 이야기를 계속해줘.”

규석 역할을 맡은 박성기씨가 연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극단 소년단원 천종수씨, 최인복씨, 박성기씨, 김영배씨, 주병철씨, 최명호씨. ©시사IN 박미소
유해 발굴을 끝낸 선감학원 공동묘역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과자가 놓여 있다. ©시사IN 박미소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시사IN 주요뉴스해당 언론사에서 선정하며 언론사(아웃링크)로 이동합니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