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만난 작은 생명들
김근희·이담 지음, 느린서재 펴냄
“산에 오를수록 산이 우리를 부른다는 생각이 든다.”
속초에 잠시 들렀다가 설악산의 풀과 나무에 빠져 10년 넘게 살게 된 부부가 있다. 두 사람은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자신들의 ‘설악산 걸음’을 그림과 글로 기록했다. 설악산에서 만난 풀과 나무, 벌레를 포함한 작은 동물만 580여 종이다. 책에는 그림 199점이 실렸다. 아침 걸음이 좋아 일찍 집을 나선 길, 등선대 정상 1000m 산꼭대기에서 만난 분홍색 나리꽃, 곰배령 내려오는 길, 어렵사리 만난 구실바위취 등이 그렇게 독자를 만날 수 있었다. 산에 오르기 더없이 좋은 계절, 곁에 두기 좋은 책이다. 충남 당진으로 ‘삶터’를 옮긴 두 사람은 자연에서 만난 생명을 그림과 글로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지극히 사적인 영국
피터 빈트·홍성광 지음, 틈새책방 펴냄
“노동자 계층이라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매너를 지키며 사는 게 영국인이다.”
외국인들이 직접 자신의 나라를 소개하는 틈새 책방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의 여섯 번째 이야기는 노동자 계층 출신의 잉글랜드인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피터 빈트의 영국 이야기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두 나라의 차이를 경험하고 그 간극이 드러내는 매력을 포착해냈다. 영국 왕실, 계층 문화, 제국과 식민지에 대한 시선을 통해 영국성에 대한 담론을 끌어내고 영국인으로 인정받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인종·종교·계층·재산이 아니라 영국인으로서의 매너라고 말한다.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 “Manners maketh man(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maketh’는 ‘makes’의 고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좀 더 새롭고 다채로운 영국을 아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바깥의 사랑들
쿄 매클리어 지음, 김서해 옮김, 바람북스 펴냄
“왜 나를 끝까지 속이기로 한 걸까?”
‘출생의 비밀’을 기대하던 때가 있었다. 내 선택과 상관없이 내게 주어진 가족들의 지긋지긋함을 목격할 때마다 그랬다. 어떤 어린이는 상상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짓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현실은 때로 상상을 앞지른다. 저자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라 굳게 믿었던 사람의 죽음 후 맞닥뜨린 일처럼. 내가 어떤 계보 안에 속했는가는 정체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핏줄’이란 ‘뿌리’는 대체 무엇일까. 사랑은 원래 제멋대로 흐르는 것 아닌가. 다리 없이도 멀리 나아가는 식물들처럼, 어디서든 뿌리내리고 얽히며 자라나는 잡초들처럼. 생의 비밀을 파헤치는 아름다운 문장이 더 큰 상상력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에듀테크, 교육에 좋은가?
닐 셀윈 지음, 유성상 외 옮김, 살림터 펴냄
“디지털 기술은 과연 ‘진짜로’ 교육을 어느 정도로 바꾸고 있는가?”
에듀테크 광풍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정부 교육계를 뒤흔든 AI 디지털 교과서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교실에 도입되는 디지털 기술은 무조건 이롭다’는 관념이 지배적이다. 30년간 학습 현장에서 디지털 교육을 연구해온 저자는 ‘정말 그런가?’라고 묻는다. 과연 인공지능 학습지는 맞춤화된 교육을 제공하며, 교실의 민주화를 이끌 수 있을까. 저자는 공공성과 책임, 관계라는 요소가 선결 조건이라고 적는다. 데이터 중심 교육은 오히려 학생 통제를 강화하고 교사 전문성을 위축할 수도 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쉽게 잊히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향신료, 인류사를 수놓은 맛과 향의 프리즘
김현위 지음, 따비 펴냄
“인류의 음식 문화는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발전했다.”
어느 나라 음식이든 향신료 없이는 제맛이 나지 않는다. 이제는 한식마저 그렇다. 생강이나 후추 없이는 도무지 기대한 맛을 못 내는 요리가 많다. 책은 한국과 세계에서 쓰이는 향신료의 차이, 교역의 역사, 시장 규모 등 향신료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정리했다. 의외로 흥미로운 대목은 ‘맛의 메커니즘’이다. 오뚜기 식문화원 원장으로 식품영양학·식품화학을 전공한 저자가, 고추의 매운맛과 겨자의 매운맛은 무엇이 다른지 상세히 알려준다. 요리책에 버금갈 만큼 그림이 많은 것도 감칠맛을 더한다. 평소 음식에 관심이 있다면 즐거운 책. 그리 관심이 없다면, 생기게 하는 책.
어느 불량 출판사 사장의 자술서
최용범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술보다 더한 쾌락을 나는 커피와 독서, 명상을 통해 얻었다.”
저자는 ‘기자 출신 출판인’이다. 2006년 출판사를 창업한 이래 200여 종을 펴냈다. 이 책은 그의 출판 이력서이자 과거에 대한 반성문이다. 왜 반성문인가? 사연이 있다. 그는 출판사 창업 전에 역사 작가와 출판 기획자로 활동했다. 그가 기획한 〈한국의 부자들〉은 60만 부 이상 팔렸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등 그가 쓴 대중 역사서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원고를 마친 새벽이면 술을 마시고 잤다. 알코올의존증으로 전문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최근 1년여 동안 단주하고, 자신에 대해 고백하는 글을 썼다. 기자·자유기고가 시절 쓴 글 중에서 만화평 등을 추려 함께 실었다. 술을 끊고 계절의 변화를 즐기게 된 출판인의 자술서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