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3일, 노동자 23명이 사망한 아리셀 참사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다. 참사가 발생한 2024년 6월24일로부터 457일 만이다. 수원지법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는 아리셀 박순관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아리셀 법인에는 벌금 8억원을, 파견법을 위반한 한신다이아와 메이셀에 각각 벌금 3000만원을, 비상통로에 장애물을 설치해 건축법을 위반한 강산산업건설에 벌금 10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시행된 후 나온 최고 형량이다.
재판부가 밝힌 양형 이유가 인상적이다. ‘이 사건 화재 사고는 예측 불가능하였던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던 예고된 인재였다. 그 이면에는 기업의 생산량 증대에 따른 이윤 극대화를 앞세워 노동자의 안전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우리 산업구조의 현실과 일용직·파견직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의 실태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24차례 공판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유족을 지원해온 법률지원단이 있다. 9월30일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의 단장 신하나 변호사(41)·손익찬 변호사(38)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신 단장은 하늘색 리본을 달았고, 손 변호사는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왔다. 하늘색은 아리셀 참사를 기억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하자는 의미에서 유족들이 결정한 상징색이다.
1심 판결이 내려지던 재판장 분위기는 어땠나?
신하나 변호사(이하 신): 재판장이 15년 형을 선고하자마자 박순관 대표가 “악!”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런 피고인은 처음 봤다. 중형을 선고받으리라 진심으로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다가 목이 메어 멈칫했던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CCTV) 증거로 확인된 이 사건 공장 3동 2층 작업장의 모습을 보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전지를 등 뒤에 두고 막다른 곳에서 작업하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위험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불안감은 피고인들(박순관·박중언 등)이 이 사건 화재 발생 전에 느꼈어야 하는 불안감이다.” 이 판결을 들으면서 나 역시도 CCTV 속 피해자들이 떠올라 울컥했다.
재판에서 주요한 법적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폭발 사고와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사이의 인과관계’였고 다른 하나는 ‘누가 실질적 경영 책임자인가’였다. 재판부는 두 쟁점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렸나?
손익찬 변호사(이하 손): 화재 사고와 관련해 주의의무는 크게 두 줄기다. 애초에 불이 나는 것 자체를 방지할 의무,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의무다. 첫 번째의 경우, 피고인 측에서 ‘완성품에 가까운 리튬 1차전지였기 때문에 화재 폭발을 예견하는 게 불가능했고, 그렇기에 화재를 막을 수도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리튬 1차전지에 대하여 가장 최신의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주체는 아리셀과 같은 리튬 1차전지 생산업체들이고 리튬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위 생산업체들이 가장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하므로 생산업체 스스로 리튬 1차전지의 안정성 확보를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기울일 고도의 주의의무가 요구된다’라고 지적했다.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회사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실제로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본 것이다.
두 번째로, 재판부는 아리셀 측이 화재 발생 후 대처할 의무 역시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가능한 대처는 ‘소화’와 ‘대피’다. 리튬 배터리에서 화재가 나면 ‘소화’가 불가능하다. 내부에서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야만 불이 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피’가 중요하다. 이건 엄청난 설비를 마련하고 금전적인 투자를 해야 가능한 게 아니다. 교육만 잘하면 된다. 아리셀 참사에서도 직원 중에 회사에서 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여러 경험을 토대로 ‘리튬 배터리가 폭발해 화재가 발생하면 불을 끄기보다 곧바로 대피해야 한다’는 걸 알아서 생존한 분들이 계시다. 재판부는 아리셀을 비롯한 피고인이 이 대처 의무를 충분히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신: 재판부는 경영 책임자와 관련한 피고인의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박순관 대표가 아니라 그 아들인 박중언 본부장이 아리셀의 실질적 경영 책임자라고 주장하며 중대재해처벌법상 책임을 면하려 했다. 피고인 측에서 첫 기일날 이 논리를 가지고 왔을 때 현장에서 벙쪘던 기억이 난다. “어느 아비가 자기 자식한테 죄를 씌우고 싶겠냐마는 형사재판의 실체적 진실을 가리고자 이렇게 말씀드린다”라고 말하던 박순관 대표의 말이 생생하다. 박중언 본부장이 아리셀에서 중책을 맡고 대부분의 실무를 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박중언 본부장이 박순관 대표에게 매주·매달 업무보고를 한 데다, 박순관 대표가 대표이사로 일상 업무 외의 의견 개진이 필요할 때 권한을 행사한 점 등을 고려해, (박순관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사업총괄책임자로서 경영 책임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률지원단은 재판 과정을 어떻게 지원했나?
신: 법률지원단은 유족과 대책위를 대리해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진행했다. 형사재판에서는 피해자 대리인으로서 피고인들의 주장이나 진술에 문제점이 있으면 의견서를 제출하고, 필요하다면 검사와 미팅을 하며 의견을 개진해왔다.
손: 특히 신경 썼던 부분은 일부 유족과 회사의 합의가 판결에 반영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일이었다. 판사는 처벌불원서(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문서)만 보기 때문에 유족과 회사의 합의 과정을 자세히 알기 어렵다. 실제로는 (이주노동자 유가족에게는 보상 기준을 중국 임금 기준으로 낮추거나,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야 사과하겠다고 하는 등) 합의 과정이 엉망이었다. 합의한 유족들도 (생계 문제 등)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합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점을 강조하면서 일자별로 회사에서 어떤 연락이 왔는지, 그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유족들이 합의할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합의 경위를 구체적으로 밝혀 의견서를 제출했다.
신: 사고가 난 것도 문제지만, 그 이후에 회복을 위해서 회사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판결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이 엉망이었기에 그걸 우리가 서면으로라도 판사에게 생생히 보여줘야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회사와의 합의를 이유로 양형을 너무 적게 준다면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될 뿐이라고.
아리셀 대표와 본부장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최고 형량인 15년 형이 선고되었다.
신: 지금까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되어도 집행유예로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전에 다른 사건에 선고된 최고 형량도 징역 2년에 불과했다. 박순관 대표에 이어 두 번째로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단계에서 구속된 봉화 영풍석포제련소 대표이사 역시, (비소 중독으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음에도) 검찰이 3년을 구형했다. 이렇게 형량이 높지 않은 건 판사들 사이에 ‘경영 책임자가 (사망사건의) 직접 행위자가 아닌데 이걸 처벌하는 게 맞나’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지방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유능한 경영자가 경영 현장에서 축출되거나 심지어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라며) 3월30일부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아리셀 1심 판결은 달랐다. 재판부는 ‘형벌만이 정답은 아니고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이 사건과 같이 다수의 근로자들이 사망한 사건에서조차 경한 형이 선고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고 높은 법정형의 처벌 규정을 둔 의의가 무색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산업재해 사건에서 낮은 징역형이 부과되어온 것이 형벌로서 일반 예방 효과(형벌을 통해 일반인에게 경고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하는 기능)가 없었다는 점을 밝혀준 점이 유의미하다.
유족들은 15년 형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손: 그 부분은 우리도 아쉽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양형 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이번 판결문에도 양형의 이유에 ‘피고인 박순관에 대한 각 죄는 양형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아니하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처음에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논의가 시작될 때는 사망한 사람 숫자에 따라서 의무적으로 처벌을 가중하는 조항이 있었는데 그게 국회 입법 과정을 거치면서 빠졌다. 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양형기준이 없어서 판사 개인의 판단에 따라 양형이 결정되고 있다. 그 때문에 현행법상 아무리 1심 판결을 내린 판사가 중한 양형을 내렸더라도 2심, 3심에서 처벌의 수위가 약해질 수 있다. 대법원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리셀 대표와 본부장에게 내려진 15년 형이 중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대부분 집행유예가 나왔지만, 의무 위반 정도가 중한 경우에는 1명 사망 시 1년, 2명 사망 시 2년 실형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 이번 판결에서 파견업체인 한신다이아와 메이셀 대표인 정용환의 경우 불법파견으로만 징역 2년이 선고됐다. 그걸 토대로 한다면 23명이 사망한 아리셀 참사의 경우 최소 25년 형(23명 사망에 대한 23년 형+불법파견에 대한 2년 형)은 나왔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의미가 있다고 보는 이유는?
신: 중대재해처벌법이 왜 제정됐는지 그 입법 취지를 처음으로 제대로 드러낸 판결이다. ‘(경영 책임자가)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변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이 죽지 않으려면 경영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밝힌 거다.
선고가 난 날 많이 헛헛했다. 판결이 어떻게 나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진 않으니까. 특히 이번 참사의 경우 이주민이 대다수인 데다 한 집안의 가장인 젊은이가 많았다. 산업재해는 늘 빈곤 문제와 엮여 있는 것 같다. 안타깝게 사망한 피해자들을 떠올리면서, 아리셀 사업주의 책임을 정확히 물은 이 판결이 사망한 피해자들에게 위안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손: 두 가지 지점에서 이번 판결의 의미를 말씀드리고 싶다. 하나는 이번 판결로, 지금과 같이 국가가 법으로 모든 사항을 다 파악하고 규제한 뒤 그걸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는 안전보건 관리 체계는 사실상 끝이 났다고 본다. 우리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사업주에게 수백 가지 의무를 지우고 있지만, 그중에서 아리셀 사업장에 들어맞는 의무 위반을 찾자면 사실 ‘비상구·비상 통로 유지 의무’ 하나밖에 없다. 재판부에서 아리셀이 지켜야 할 의무라고 봤던 ‘열 감지기 설치’ ‘(사건 발생 이틀 전 발생한 전지 폭발 사고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전지들에 대해) 후속 공정 중단 또는 발열 검사 실시 및 분리 보관’ 등의 의무는 법에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피고인의 변호인들이 ‘법을 위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온 거다.
그런데 재판부에서는 이번 재판에서 ‘법으로 미리 정한 의무 위반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리튬 1차전지 사업주라고 한다면 열감지기 설치 등의 의무가 있다’고 봤다. 사업주라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국가가 법으로 세세하게 규정하고 규제하지 않아도 그 위험성에 대해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본 거다. 아리셀이 생산하는 리튬 1차전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국가가 아니라 리튬 1차전지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던 아리셀 사업주니까. 결국 예방까지 작동하는 규제 체제를 만들려면 국가가 규제하는 게 아니라 그 사업장을 가장 잘 아는 사업주가 위험성을 평가하는 자율 안전 규제로 가야 한다는 걸 이 판결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파견법의 입법 취지를 명확히 밝힌 점이다. 판결문에는 ‘파견법 제5조 제1항에서 직접생산공정 업무를 파견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숙련되지 못한 파견근로자가 충분한 정보 없이 업무에 투입될 경우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영자 측에서는 (더 쉽게 해고하고 쉽게 고용하는 방식으로) 불안정 노동을 확대하기 위해 법 제도를 흔들고 있는데, 불안정 노동을 확대하면 안전문제가 발생한다는 걸 판결을 통해 정확하게 보여줬다고 본다.
박순관 대표가 판결이 나온 지 이틀 만에 항소했다.
신: (피고인은) 2심, 3심까지 가면 형량이 당연히 깎일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손 변호사 말처럼 법률지원단과 유족으로서는 형량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에, (우리는) 앞으로 오히려 더 많은 형량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또한 2심으로 가면 아무래도 (1심 판결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단계이니만큼) 현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최대한 유족의 입장과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서면을 통해 보충 설명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라고 본다.
손: 1심 판결로 박순관 대표가 구속되었고, 6개월 이내에 끝나지 않으면 보석으로 석방된다. 그렇게 되면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피고인 측에서는 그렇게 되도록 지연 전술을 쓰려 할 거다. 우리도 그 전략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는 두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