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이름이 불미스러운 맥락으로 오르내린다. 김건희씨가 이우환 화백 그림을 뇌물로 받았다는 혐의 때문이다. 김씨 친오빠 김진우씨의 장모 집을 압수수색하던 김건희 특검이 이 화백 그림을 발견했다. 작품명은 ‘점으로부터 No. 800298(이하 ‘점으로부터’)’. 유통경로를 추적한 특검은 이 작품을 김상민 전 검사가 샀다고 밝혔다. 김 전 검사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김건희씨에게 공천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우환 화백 작품이 뇌물이었다는 것이다.
핵심 사실관계는 우선 그림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다. 김진우씨와 김상민 전 검사, 김건희씨 모두 김건희씨에게 전달한 그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거래는 공천 청탁이 아니라 김진우씨의 ‘구매대행’이라는 것. 김상민 전 검사는 김진우씨가 “김건희 가족이 그림을 산다는 소문이 나면 가격이 뛸 수 있다”는 이유를 들기에 대신 구매해줬다고 말했다.
‘대가성’ 외에 쟁점이 또 있다. 진위 논쟁이다. 판매자는 그림값으로 1억4000만원을 불렀으나 김상민 전 검사는 ‘공직자 신분’을 강조해 1억2000만원에 샀다. 특검은 1억4000만원 가액 뇌물죄를 적용하려 한다. 그런데 김 전 검사 측은 그림이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르면 수뢰액 3000만원, 5000만원, 1억원 기준에 따라 각각 징역 5년 이상, 7년 이상, 10년 이상으로 가중처벌한다. 미술품이 뇌물로 오간 사건에서는 형량을 낮추기 위해 ‘위작을 선물한 것’이라고 변명하는 일이 적잖다. 그런데 특검이 실제 감정을 의뢰하면서 이 사안은 더 복잡해졌다. 한국화랑협회는 진품, 한국미술품감정센터는 위작이라고 판단이 갈린 것이다. 무슨 일일까. 미술계 한편에서는 오랜 병폐를 이야기한다.
이우환 화백의 예술적 입지는 확고하다. 세계 무대에 알려진 몇 안 되는 한국 추상화가 중 한 명이다. 이 화백은 서울대 미술대를 중퇴하고 일본에 정착했다. 1960년대 일본 예술운동인 ‘모노파(物派)’ 운동에 대한 평론을 써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모노파는 물체 그 자체에서 미학을 발견하는 사조로, 이우환의 비평과 작품 활동은 그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점 연작, 선 연작 등 일정한 패턴을 쓴 추상화는 대개 활동 초기로 분류되는 1970년대 작품이다. 이후 그의 작품 경향은 캔버스에 점 한두 개만 찍는 형태로 변모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점으로부터’ 역시 1970~1980년대 작업으로 추정된다. 가장자리에 “L. UFAN 80”이라는 서명이 들어가 있다.
이우환 화백은 작품 값이 가장 비싼 국내 화가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의 6월27일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경매사 9곳 총합 낙찰가 1위는 이우환의 작품(16억원)이었다. 수요도 높다. 2024년을 제외하면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매해 낙찰 총액 1위는 이우환 화백 차지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잠깐 미술품 구매 열풍이 불자, ‘이 화백 작품은 비싸서 문제일 뿐, 일단 사면 값은 무조건 오르는 것’이라는 평이 파다했다. 예술에 대한 관심 증대뿐 아니라 부유층의 절세, 혹은 탈세 수단으로 알려진 것도 한 원인이다. 다른 자산에 비해 미술품은 세금 부과액이 적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작가가 사망하면 작품 가치는 더욱 오른다. 이 화백은 올해 89세로, 생존해 있는데도 작품 가격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진위 논쟁 최종 책임은 결국 작가 몫”
그럼에도 이우환 화백의 작품, 나아가 미술품 전반이 ‘안정적 자산’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위작 시비다. 유독 그가 입방아에 오른 데에도 이유가 있다. 2016년에도 이우환 작품의 위작 논란이 일어났다. 위작 13점이 드러나 판매상과 위조범이 잡혔다. 그런데 이 작품들을 본 이우환 작가 본인은 “전부 진품이다. 호흡이나 리듬, 채색 방법이나 다 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캔버스 제작 기법과 물감 성분을 들어 위작이라고 판단했다. 법원도 인위적 캔버스 노후화 작업 등을 근거로 위작이라고 판결했다. 미술시장에서는 작가도 몰라보는 위조품이 유통된다는 의미다.
‘점으로부터’ 진위를 두고 두 감정기관의 결론이 엇갈린 데 대해 일각에서는 감정의 전문성 부족을 비판한다. 시비가 일 때마다 정부 주도 감정기관 설립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미술품 진위 논란은 이우환 작가나 한국 작품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다. 그럼에도 정부가 직접 미술품을 감정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글로벌 미술품 경매사 소더비의 한국지사장을 지낸 조명계 전 홍익대 교수(문화예술경영 전공)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만 보고 진위를 완벽히 밝히는 건 과장해서 신의 영역이다. 국가 주도 기관이라도 감정사가 인간인 이상 실수는 필연이다. 전 세계 모든 미술시장이 이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성숙되어간다.” 정부 주도 기관 역시 그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음에도, 부당한 권위가 부여된다는 이야기다.
근원적 해결책은 작가가 내놓아야 한다고 조 교수는 말했다. 위작 시비가 인 뒤에야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어느 시점이든 미리 기록을 남겨놔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제작 당시가 아니라도 어느 시점이든 전작 도록(Catalogue Raisonné)을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작이 많은 피카소 작품도 전작 도록에 실려 있다면 100% 진품이다. 출판사와 협업해야 하고, 돈이 많이 들기에 정부 지원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결국 최종 책임은 아티스트가 져야 한다.”
일반론을 제외하면 미술계는 대체로 이우환 화백 이야기를 꺼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계 인사는, 다소 위험한 견해라면서도 이 화백의 항변에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작가에게는 ‘진품’이라고 말할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위작을 보고 위작이라고 하면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 위작이 고가에 거래된다는 사실 자체로 진품의 예술성에 금이 간다는 의미다. 2016년 이 화백은 본인 작품들이 “고유의 호흡으로 그리기에 모방하기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조악한 수준의 가짜와 심미성을 갖춘 예술품(진품), 둘만 있을 뿐이라는 것. 그런데 사람들이 수억 원을 들여 ‘호흡’ 없는 가짜 그림을 산다면, 그 호흡은 여전히 고유한가? 혹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까지 도달한다면, 위작을 알아보는 것 못지않게 알아본 위작을 인정하는 것 역시 작가로서는 어려운 일이 된다.
김건희씨는 특검 조사에서 이우환 화백 그림을 보고 “짝퉁으로 보인다. 나 같으면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현 단계에서 진술의 진위는 판단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미술계의 타격이다. 짧은 활황 이후 다시 침체에 들어간 미술시장은, 부정한 이들의 수상한 거래를 계기로 상처에 소금을 뿌린 모양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