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 튼 ‘노란봉투법’, 우리는 준비돼 있나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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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1. 오전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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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노란봉투법은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법이었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파업을 계기로 원·하청 교섭 법으로 경로를 틀었다. 노조법 제2조의 사용자 개념 확대를 두고 엇갈린 평가가 존재한다.
©시사IN 이정현


‘노란봉투법’은 2013년 12월,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배춘환씨가 〈시사IN〉에 보낸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됐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47억원 손해배상(손배)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고 보낸 그의 편지에는 현금 4만7000원이 들어 있었다. 〈시사IN〉은 2014년 신년호에 이 사연을 실었다. 편지를 본 독자들이 배씨를 따라 4만7000원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시사IN〉은 공익 기부 전문재단인 아름다운재단에 모금을 의뢰했고, 2014년 2월10일부터 5월30일까지 시민 4만7547명이 14억6874만원을 모았다. ‘노란봉투 프로젝트-우리가 만드는 기적 4만7000원’ 캠페인이다.

손배·가압류에 시달리던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2003년이다. 손배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나고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이야기가 잊을 만하면 들려왔다. 이 모금이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헌법이 보장한 파업권을 행사했다가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을 긴급구제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관련 법을 정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노란봉투 캠페인을 계기로 2014년 2월 출범한 시민단체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는 은수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함께 ‘법·제도 개선 위원회’를 꾸렸다. 1년여 만인 2015년 4월6일 은수미 의원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노란봉투법안이 처음 탄생한 순간이다.

2013년 12월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배춘환씨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47억원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고 <시사IN>에 보내온 편지. 현금 4만7000원이 들어 있었다. ©시사IN 조남진


당초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노조법 제3조였다. ‘이 법(노조법)에 의한 파업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법(노조법)에 의하지 않은 파업’, 즉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손배를 청구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법원은 그렇게 해석해왔다.

그런데 파업은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손해를 본 기업’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해 그 물적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부과하려 한다. 법원은 파업이 일어날 때마다 노조법상의 세세한 규정을 지켰는지를 따져 노조법 제3조를 오히려 손배 청구를 인정하는 근거로 써왔다. 엄연한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중 하나인 파업 때문에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노동 현장에 자욱했다. 이 조항 자체로 파업 행사권을 사실상 차단하는 효과를 조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첫 노란봉투법안은 노조법 제3조에서 ‘이 법에 의한’이라는 문구를 삭제해, 원칙적으로 파업에는 손배 청구를 할 수 없게 했다. 단 노동조합의 활동이 폭력이나 파괴를 주되게 동반한 경우 등은 예외로 두었다. 또한 손배를 청구하더라도 노동조합이 아닌 그 간부나 조합원 등 ‘개인’에게는 원칙적으로 청구할 수 없도록 했다. 파업 참여는 간부나 조합원 등 개인이 아니라 ‘노동조합’이라는 단체의 결정에 따른 행위라는 취지에서다. 영국의 입법례를 참고해 손배 청구액 상한도 정했다. 노조 조합원 수가 300명 미만이면 2000만원 이하, 1만명 이상이면 5억원 이하로만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2015년 10월19일 노란봉투 캠페인 1년을 돌아보는 토크 콘서트에 참석한 은수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 세 번째). 은수미 당시 의원이 첫 노란봉투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시사IN 이명익


그러나 첫 노란봉투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가장 큰 벽은 민법이었다.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한국에서는 폭력이나 파괴를 동반하지 않았더라도 주체·목적·절차·수단 중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불법파업’으로 간주될 수 있다. 예컨대 파업의 목적이 근로조건 개선을 넘어선 ‘민영화 정책 반대’라거나, 파업하기 전 조합원 찬반 투표 등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면 불법파업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노란봉투법이 시행되었더라면, 주체·목적·절차·수단에 문제가 있더라도 회사 측은 폭력이나 파괴를 동반한 경우 등이 아니면 손배를 청구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기업들은 기존 노조법으로도 ‘합법 파업’엔 손배를 청구할 수 없는데, 불법파업의 일부에까지 손배를 청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사업주의 재산권과 재판청구권을 사실상 봉쇄한다는 측면에서 위헌적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시민들은 민법에 의거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데,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노조가 아닌 개인에게는 손배 청구를 막거나 조합원 수에 따라 손배 청구액을 제한하는 첫 노란봉투법안의 조항들도 ‘몇 명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민법 제760조 등에 위배된다는 지적에 맞닥뜨렸다.

첫 노란봉투법안은 이 같은 비판과 반발을 넘어서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때 처음 발의되었는데, 노란봉투 캠페인 참여자이자 ‘손잡고’ 발기인인 문재인 대통령 집권기에도 법제화되지 못했다.

손배액 47억원에 ‘0’ 하나 더 붙어



그렇게 묻히는 듯했던 노란봉투법은 윤석열 집권 첫해인 2022년 새 국면을 맞는다. 그해 6월22일부터 51일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업체 용접공 유최안씨가 거제 옥포조선소에 가로·세로·높이 1m짜리 철제 구조물을 만들고 그곳에 들어가 농성을 벌이면서다. 대우조선은 유최안씨 등 하청 노동자 5명이 조선소 도크(배 만드는 곳) 일부를 점거해 업무에 차질을 빚었다며 이들에게 파업 기간 인건비와 생산경비 등 고정비 470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같은 해 8월26일에 냈다. 노란봉투 캠페인을 촉발했던 쌍용차 노조의 47억원 손해배상 사례에 ‘0’ 하나가 더 붙었다.

2022년 6월24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업체 용접공 유최안씨가 거제 옥포조선소에 가로·세로·높이 1m짜리 철제 구조물을 만들고 그곳에 들어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2013년에 47억원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쌍용차 노동자들은 정규직이었지만, 2022년 470억원 손배 청구를 당한 이들은 대우조선의 하청 노동자였다는 점이다. 이 하청 노동자들은 조선업 불황 시기에 깎인 임금을 회복시켜달라며 파업을 벌였는데, 하청업체들의 자금 여력은 원청인 대우조선이 주는 도급비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유최안씨 등이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은 하청업체지만, 이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존재는 원청인 대우조선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하청 노동자들이 하청업체가 아니라 원청인 대우조선과 임금 등을 교섭(의논)할 수 있었다면, 조선소 도크를 점거해 손배 청구를 당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런 논리로 2022년 8~9월부터 ‘노란봉투법만으로는 안 된다, 노조법 제2조도 개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앞서 보았듯 기존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노조법 제3조였다. ‘이 법(노조법)에 의한 파업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는 손배를 청구할 수 없다’는 규정을 개정해서,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를 어렵게 하자는 취지였다.

새 쟁점으로 떠오른 노조법 제2조는 ‘근로자’ ‘사용자’ ‘노동조합’ 등 이 법안과 관련된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개념을 규정한 조항이다. 예컨대 ‘사용자’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규정되어 있었다. ‘사업주’라고 하면 보통은 노동자를 직접고용한 회사를 의미한다. 최근 몇 년간 하청 노동자가 자신을 고용하지 않은 원청업체와도 교섭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오긴 했으나, 법에는 명시적 규정이 없었다.

그런데 이 사용자 규정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추가하면 어떻게 될까? 하청 노동자가 일정한 경우에는 원청과도 교섭할 수 있다는 내용이 법에 명문화된다. 상당수의 원청 기업들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판례만이 아닌 법 조항에 근거해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해 9월14일 민주노총·참여연대 등 64개 노동·법률·시민·종교 단체가 출범시킨 단체 이름도 ‘원청 책임/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다. 이날을 기점으로 노조법 제2조의 사용자 개념 확대가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에 포섭됐다.

이는 하청 노동자들이 당하는 부당한 임금 삭감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주체가 해당 하청업체뿐 아니라 원청이기도 한 현실(또한 실제로 주로 하청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여 원청으로부터 손배 청구를 당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노동운동의 숙원이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부터 민주노총 등은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넓혀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진짜 사장’인 대기업 원청이 교섭에 나오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개별 사업장에서 비슷한 취지의 판결이 나오긴 했지만 법 개정 주장은 20년 넘게 진지하게 검토된 적이 없었는데,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을 계기로 그 어느 때보다 법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진보 성향 노동법 학자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노란봉투법을 추동한 단위는 ‘손잡고’였고 손배가 핵심이었는데, 운동본부가 되면서 온갖 원념이 투사되었다. 손배로 시작한 노란봉투법이 원·하청 교섭으로 경로를 틀었다.”

2022년 9월14일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노조법 2조의 사용자 개념 확대가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에 포섭됐다. ©연합뉴스


노조법 제2조 개정안은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으로 2023년 11월9일 처음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은 ‘산업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고, 국가경제에 막대한 어려움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슷한 법을 2024년 8월5일 다시 통과시켰다. 윤석열은 재차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후 12·3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정권이 바뀌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2개월여 만인 올해 8월24일 최종 버전의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선 두 번을 포함한 세 번 모두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채 표결이 이뤄졌다. 9월2일 이재명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을 공포했다.

첫 노란봉투법 핵심 세 조항은 빠져



앞서 보았듯 ‘사용자’ 개념은 확대됐다. 반면 첫 노란봉투법의 핵심 조항(파업에 대한 원칙적 손배 청구 금지, ‘개인’에 대한 손배청구 금지, 손배 청구액 상한 설정)들은 이번 개정에서 모두 빠졌다. 사실상 초기 노란봉투법의 문제의식이 어느 정도 관철된 부분은 파업의 목적을 확대한 조항이다. 법 개정 이전에 정리해고 반대 파업은 사용자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였다. 그러나 개정법에선 ‘정당한 파업’으로 인정될 여지가 생겼다.

한 대형 로펌 노동 변호사는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를 제한하는 조항인) 노조법 제3조에서는 사용자가 걱정할 만한 유의미한 변화가 사실상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의 이름으로 통과된 노조법 제2조의 사용자 개념 확대는 사용자에게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노조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수 없다.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젠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업체에 ‘우리의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갖고 있지 않냐’며 법 조항을 근거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그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데도 원청이 이를 거부했다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300인 이상 대기업이 사내하청이나 파견 등의 형태로 ‘간접적으로 고용’한 노동자 수는 2023년 기준 101만1000명이다.

8월24일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사IN 조남진


노조법 제2조 개정에 대해선 엇갈린 평가가 존재한다.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처음 노란봉투법이 제기한 문제를 훨씬 뛰어넘는 법이 만들어졌다. 원래 모든 뛰어난 의약품은 다른 관찰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다고 하지 않나. 한국 사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만들어졌다”라고 평했다. 반면 앞서 인용한 노동법 학자 A씨는 우려의 뜻을 비쳤다. “더 많은 조정과 합의가 필요했음에도 윤석열이 거부권을 두 번 행사했다는 이유로 노조법 제2조 개정이 ‘후퇴할 수 없는 선’이 되어버렸다. 이 법이 작동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데, 실제로는 아무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법이 정말로 통과될 거라고 원청 노조들이 신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노조법 제2조 개정은 번번이 윤석열의 거부권에 막히면서 실제로 공포·시행될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12·3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 비로소 법 통과가 현실화되었다. 노조법 제2조 개정으로 하청 노조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게 되면, 당장 그 기업의 원청 노조가 배타적으로 갖고 있던 교섭의 주도권을 하청 노조와 일부 나눠야 한다. 노조법 제2조 개정이 하청 노조들의 염원이었던 건 맞지만, 원청 노조들은 스스로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처음 노란봉투 캠페인을 촉발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 확정금액과 지연이자를 더한 39억원에 대해 쌍용차의 후신인 KG모빌리티가 집행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9월30일 내렸다. 2009년 옥쇄 파업으로 손배 청구를 당한 지 16년 만이다.

하지만 개정 노조법으로도 여전히 노동조합과 조합 간부에 대해서 파업에 따른 손배 청구는 가능하다.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 어느 정도 교섭을 할 수 있을지, 이런 변화가 노동시장 격차 완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노란봉투법’은 내년 3월10일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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