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공유한 슬픔, 나만의 이야기 [연휴 정주행 추천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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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03. 오전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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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넷플릭스 최초로 3억 뷰를 돌파했고 얼마 전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은 약 500만 관객을 모았다. 모두 애니메이션이다. 이어서 볼만한 애니메이션을 찾고 있거나, 다양한 ‘국적’의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평론가들이 꼽은 작품 네 편을 추천한다. 두 시간짜리 영화와 TV 시리즈가 섞여 있다. 유난히 긴 추석 연휴, 몰아서 보기 좋은 분량이다.

스파이더맨의 세계관을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로 다시 써 내려간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평행우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이외에도 평행선상에 존재하는 다른 우주가 있다는 가설이다. 평행우주론에 근거해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곤 하는데, 대표적 작품이 바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이하 〈에에올〉)이다. 〈에에올〉에서는 상황마다 사람이 내리는 선택에 따라 우주가 분기된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인 ‘에밀리’는 그 모든 가능성 중에서 최악의 선택만 해온 인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다른 온 우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선택된다. 평행우주론이 꾸준히 사랑받는 건 아마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에에올〉의 ‘에밀리들’은 매번 다른 선택을 했던 인물인 만큼, 공통의 경험이랄 게 없다. 반대로 이런 평행우주는 어떤가. 내가 나이기에 겪어왔던 슬픔과 고독을 그 모든 우주에 거주하는 또 다른 ‘나’들이 함께 경험해온 우주 말이다.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 가족들에게도 정체를 숨겨야 하는 고독함, 소중한 사람의 죽음 등···. 나에게만 닥친 줄 알았던 슬픔과 불행이 사실 다른 우주의 모든 ‘나’가 겪는 공통의 이야기였으며, 그러한 일을 경험한 ‘나’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우주라면. 2023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이하 〈스파이더버스〉)의 배경은 바로 이런 곳이다.

〈에에올〉의 에밀리들은 모두 그 외양이 같았지만, 〈스파이더버스〉의 스파이더맨들은 성별도, 나이도, 연령도, 심지어 종까지 다르다. 공룡 시대에서 건너온 ‘스파이더 공룡’, 고양이 모습의 스파이더캣까지 있다. 이 작품의 대단한 점은 각각의 스파이더맨이 존재하는 차원을 고유하게 보여주기 위해 주요 캐릭터들을 저마다 다른 그림체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어떤 인물은 전형적인 3D 캐릭터로, 또 어떤 인물은 수채화 느낌의 채색으로, 다른 스파이더맨은 종이에서 오려낸 듯한 2D 질감으로 표현됐다. 서로 달리 그려진 캐릭터가 한데 모여 있기에 혼란스러울 것도 같지만, 놀랍게도 조화롭다. 칸과 효과음 등 만화에서 사용되는 연출 기법을 활용하여 이 모든 캐릭터를 각기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으로 훌륭하게 살려낸 수작이다.

연출만 뛰어난 것이 아니다. 스토리도 아름답다. 누구든 깊은 슬픔을 겪을 때, 나만 이런 일을 경험하는 게 아님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동질감과 위로를 얻곤 한다. 그러나 〈스파이더버스〉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슬픔을 공유함으로써 얻는 위로도 있지만, 그럼에도 결국 나만 쓸 수 있는 고유한 서사가 있다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서사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스파이더버스〉 이후의 이야기는 2027년 개봉될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유니버스〉에서 매듭지을 예정이다.

완전히 결말이 나진 않았지만 〈스파이더버스〉는 이미 그 자체로 가족, 친구들과 함께 관람하기 좋은 정말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다. “피터,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단다”라는 벤 삼촌의 마지막 유언을 기억하는지. 〈스파이더버스〉 역시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가진 고유의 맥락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스파이더맨의 세계관을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로 다시 써 내려가며 훨씬 더 풍성한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를 창조해냈다. 그래서 이번 연휴, 누군가와 함께 즐길 만한 애니메이션으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 스파이더맨이 아니기에 우리가 직접 차원 이동이나 우주여행을 할 순 없지만, 그보다 더 심원하고 가까이에 있는 다른 이들의 우주를 건너며 더 깊은 이해와 화해를 나누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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