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표현이지만 ‘천재’라는 말만큼 피차몬 여판통(36)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위원장의 유년을 잘 설명하는 수식어도 드물다. 열세 살에 타이 명문 탐마삿 대학에 들어갔다. 4년 뒤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국제관계학 석·박사 학위를 땄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1년씩 공부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대학(UNSW) 교수로 임용되었을 때 스물여섯 살이었다. 2022년부터 유엔에서 일하고 있다. 재능을 공공선 구현에 쓰기 위해서다.
여판통 위원장이 속한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은 2011년 설립된 조직이다. 유엔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승인한, ‘기업과 인권에 관한 지침’을 보급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 각지를 대표하는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다. 여판통 위원장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각국의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검토하며 유엔총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만드는 게 주 업무다.
‘기업의 인권침해 사례’는 포괄적이다. 여판통 위원장은 아동노동, 장기 밀매와 같은 사례부터 환경오염 피해, 성폭력 문제까지 폭넓게 주목하고 있다. 그는 현장에서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새롭게 느끼는 바가 많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살충제로 수질이 오염돼 병에 걸리고, 유산까지 겪는 일이 있었다. 피해자를 만나 무엇이 필요한지 묻자 ‘그저 생계를 위해 다시 벌꿀을 팔 수 있게 되길 바란다’는 소박한 대답을 해서 충격이었다.”
경제성장을 이룬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인권침해는 빈발한다. 여판통 위원장은 이번 한국 방문 중 이주노동자 단체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불법적 취업 수수료 부과, 불평등 노동계약 등 전 세계적으로 빈번한 현상을 한국에서도 들었다. 여전히 노동자를 ‘사람이 아니라 경제적 자산’으로 여기는 인식을 지적했다. 2023년 일본 연예계 성착취 피해자들을 만난 일도 잊기 어렵다.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 목숨을 구해주었다”라는 피해자들의 감사 인사를 받았다. 여판통 위원장은 성착취처럼 일반적으로 ‘기업의 침해 사례’로 여기지 않는 일을 발굴하는 데 관심이 높다.
역대 최연소 실무그룹 위원장인 그는 ‘젊은 아시아인 여성’으로 무수한 도전에 맞닥뜨렸다. “학위를 산 것 아니냐”라는 가시 돋친 농담을 듣고, “당신 말고 위원장님은 어디 계시냐?”라는 편견 어린 오해를 받았다. 나이 든 남성 동료들과 달리 ‘교수님’ 호칭도 잘 듣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유엔 업무와 더불어 전임교수직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 불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좌절할 때마다 동기부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