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 무데 지음 권은하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2030 남성은 극우화되었는가.’ 지난 대선 직후 실시한 〈시사IN〉·한국리서치 웹조사에서 풀고 싶던 질문 중 하나다. 이 조사 데이터를 김창환 미국 캔자스 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분석한 결과, 전체 국민의 6.3%가 극우인 가운데 20대 남성의 15.7%, 30대 남성의 16%가 극우로 추정되며 서울 거주 경제적 상층일수록 극우 청년일 확률이 높았다. 반면 국승민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20대 남성이 보수적인 건 맞지만, 극우화되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고 봤다.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왜 다른 결론이 나왔을까? ‘극우’의 정의가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극우가 무엇인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며 세계적으로 일치된 합의도 없다. 분명한 건 ‘극우란 무엇인가?’ ‘이준석에게 투표한 이들도 극우라고 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이 좋든 싫든 한국 사회가 오래 논쟁해야 할 주제라는 점이다. 이에 답하기 위한 첫걸음이 되어줄 책이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다.
전작 〈포퓰리즘〉(공저)에서 포퓰리즘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제시했던 정치학자 카스 무데가 이번엔 극우를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극우는 ‘자유민주주의에 적대적인 반체제 성향의 우익’이다. 극우는 다시 둘로 나뉘는데 ‘민주주의의 본질인 국민주권과 다수통치 자체를 거부하는 극단 우익(extreme right)’ 그리고 ‘민주주의의 본질은 수용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인 법치나 권력분립, 소수자 권리 등의 개념에는 반대하는 급진 우익(radical right)’이다. 세계 각지에서 급진 우익이 점점 주류 정당이 되고 있다.
외국의 극우 논의는 한국과 맥락이 딱 들어맞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민주주의 체제는 존중하지만 소수자의 권리에는 적대적인’ 어떤 경향을 극우 논의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극우’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부터가 싸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