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당’이나 ‘무설탕’은 더 건강할 것 같다고?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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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9.17. 오전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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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더블스피크



윌리엄 러츠 지음, 유강은 옮김, 교양인 펴냄

“이중화법은 소통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는 말이다.”

‘무가당’이나 ‘무설탕’ 식품은 더 건강할 것 같다고? 아니다. ‘무가당’ ‘무설탕’은 수크로스(일반 백설탕)가 들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꿀이나 덱스트로스(옥수수당), 프럭토스(과당), 마노스, 글루코스, 소르비톨 등 칼로리가 높은 여러 감미료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천연(natural)’이라는 단어는 어떨까? 수많은 화학물이 들어 있어도 적잖은 국가 법률상 ‘천연’ 비누·샴푸·사료로 표기할 수 있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저자는 거짓된 언어를 진실처럼 포장하는 힘을 분석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정부 공식 담화, 기업 광고 문구, 언론보도와 일상의 언어에 이르기까지 말 속에 숨은 기만적인 의도를 드러낸다. 참사가 ‘사고’로 둔갑하고 법원 폭동이 ‘저항권’으로 분칠된, 조작된 언어를 파헤친 책.



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미깡 지음, 이야기장수 펴냄

“올해도 술을 담가야지.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매 순간을 즐겨야지.”

〈술꾼도시처녀들〉이 세상에 나온 지 11년 됐다. 작품은 드라마로 만들어져 빅 히트를 쳤고, 미깡 작가도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술을 마셔도 금방 취한다. 그래도 술을 좋아하는 건 여전하다. 오랜만에 술을 소재로 한 일상 만화를 선보인다. 진토닉으로 시작해 위스키, 폭탄주, 보드카 샴페인, 증류식 소주, 고량주, 사케 매실주까지 서양 술과 동양 술 20잔을 만화로 소개한다. 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술을 대하는 작가의 ‘세계관’이 핵심이다. 증류식 소주 중 무얼 고를지 애매하다거나 세계 판매 1위의 보드카를 만드는 국가가 궁금하다면(러시아는 아님), 또 와인에 범죄자의 얼굴이 그려진 이유가 알고 싶다면 펼쳐 보길 권한다. 술을 안 마시는 사람도 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다.



아주 느린 작별



정추위 지음, 오하나 옮김, 다산책방 펴냄

“당신이 온 세상을 잊어도 나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아내 정추위는 타이완의 언어학자, 남편 푸보는 수학 교수다. 결혼한 지 40년이 넘었다. 아침저녁의 대화가 루틴이라고 할 만큼 많았는데, 어느 날부터 푸보의 말이 짧아지고 침묵이 잦아졌다. 치매가 찾아온 것이다. 푸보는 좋아하던 커피를 수십 잔 내려 집 곳곳에 두기도 하고, 전화를 수도 없이 걸어댔다. 외출해 집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수십 년 연구를 해온 지성도, 두 사람의 깊은 유대도 치매 앞에 무력해졌다. 정추위는 예정보다 이른 은퇴를 하고, 푸보를 돌보기 시작했다. 배운 것과 살아내는 것의 차이를 느끼며 치매가 동반한 상실을 온 힘을 다해 마주한다. 그 돌봄의 시간을 담은 이 에세이는 타이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엘리 펴냄

“어렸을 때 나는 조개를 귀에 대고 바닷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국제전화였다.”

다와다 요코라는 작가의 명성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려주는 깃발 같은 책이다. ‘책 읽는 사람의 몸에 무한히 큰 공간을 만들어’주는 이야기란 이런 글이구나, 감탄하며 마음을 뺏기고 만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독일에서 살며 쓰는 작가는 두 언어 사이를 숙명처럼 오간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뜻인가?”라는 질문은 국경이 그어놓은 경계나 질서를 흐트러뜨리며 나아간다. “모어에서는 생각이 단어에 너무 꼭 들러붙어 있어 단어나 생각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가 없”었지만 낯선 언어는 되레 사유를 확장했다. 그가 낯선 장소에서 자각한 것은 또 있다. “모어에도 내 마음과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란 없다”라는 것. 그에게 ‘쓴다’는 일은 ‘듣는다’에서 출발하는 사건이다.



관내 여행자-되기



백가경·황유지 지음, 열린책들 펴냄

“달리 말해 산 자의 발아래는 많은 죽음이 〈있다〉.”

하나의 공간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듯 글을 나눴다. 선택받은 장소들이 내포한 사회적·역사적 의미는 뜻밖에도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경기 의정부 미군부대 앞 뺏벌마을은 기지촌 ‘언니들’에게 집이자 감옥이었다. 옛 성병 관리소 건물로 쓰인 두레방을 찾아 그 아래 묻힌 성매매 여성들의 고통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으로서 겪어온 사회적 차별과 폭력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깨닫게 된다. 공간을 통해 타인의 처지를 이해해보기 위한 여정은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서울 용산구 이태원을 거쳐 광주까지 나아간다. “죽어간 그들과 우리는 결국 하나다”라는 말을 건네는 듯한 여행기를 압축하는 키워드는 ‘관통’이다. ‘아픔(痛)을 연결(通)’한다는 의미심장한 뜻을 담았다.



광합성 인간



린 피플스 지음, 김초원 옮김, 흐름출판 펴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최상의 상태로 살아가거나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야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TV나 스마트폰을 보다 새벽에야 자는 이도 많다. 건강에 나쁘다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하긴 하나, 당장의 업무와 재미를 앞세우는 쪽을 택한다. 미국 과학 전문기자인 저자는 그 영향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적었다. 인류 역사를 넘어, 모든 생명체의 몸은 태양의 주기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태양 수준의’ 인공조명이 발명되어 이 추세를 깬 건 몹시 최근의 일이다. 인공조명은 야생생물에도 영향을 준다.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짝짓기 시기를 놓치고, 개체수가 감소한다. 수면이 불규칙한 사람은 체중이 늘고 각종 염증에 시달리며 시력이 약화된다. 저자는 무척 간단하고,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밖으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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