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둬진 채 굶어 죽는 가자지구 주민들,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나

권은혜 기자 TALK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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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9.16. 오전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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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2일 유엔 기근 감시 시스템인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가 가자지구에 처음으로 ‘기근’을 선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를 ‘인류의 총체적인 실패’로 규정했다.
8월23일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무료 급식소 앞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EPA


“가자지구의 생지옥을 설명할 단어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을 때, 새로운 단어가 추가되었습니다. 바로 ‘기근’입니다. 이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닙니다. 인재(人災)이며, 도덕적인 폐단의 흔적이자, 인류의 총체적인 실패입니다.” 8월22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발표한 성명의 일부다.

8월22일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Integrated Food Security Phase Classification)’가 보고서를 펴내, 가자지구에 식량 위기 최고 단계인 ‘기근(Famine)’이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IPC는 전 세계 인도주의 기관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식량 위기 평가 체계로, 한 지역의 식량 불안정 수준을 1단계(최소)부터 5단계(재앙 혹은 기근)까지 분류한다. 이 중 가장 심각한 단계인 5단계 ‘기근’은 해당 지역 인구의 최소 20%가 극심한 식량 부족을 겪고, 5세 미만 아동의 급성 영양실조 비율이 30% 이상이며, 인구 1만명당 2∼4명이 매일 굶주림이나 영양실조 등으로 목숨을 잃는 상황일 때 선포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 인구(2025년 기준 210만명)의 4분의 1이 넘는 50만명 이상이 굶주리고 있다.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9월 말까지 그 수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64만1000명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IPC는 2004년부터 전 세계 기근 현황을 관찰해왔지만, 아프리카 지역 외에 기근이 선포된 것은 처음이다. 이에 이스라엘 외교부는 “가자에는 기근이 없다” “IPC가 하마스의 허위 캠페인에 들어맞는 ‘맞춤형’ 보고서를 발표했다”라며 결과를 부정했다.

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유대교 안식일에 이스라엘에 대규모 공격을 가한 후 전쟁은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하마스가 지배하고 있는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공격 이후 전쟁 기간에 사망한 가자 주민은 9월1일 기준 약 6만3557명에 달하며 절반이 여성과 어린이다. 이 중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자는 348명이고, 그 가운데 127명이 아동이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활동가 박이랑씨는 가자지구의 기근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현지에서는 가자지구의 생지옥을 이렇게 표현한다고 한다. ‘가자지구에는 이제 두 계층밖에 없다. 먹을 수 있는 계층과 먹을 수 없는 계층.’”

‘팔레스타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활동가 박이랑씨가 팔레스타인 연대를 의미하는 스카프를 보여주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가자지구에 ‘기근’이 선포된 것이 인재(人災)라고 명명되는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3월 외국 비정부기구(NGO)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보이콧 운동을 조장한다고 판단되면 NGO 등록 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국제 NGO들은 3월2일부터 구호물자 트럭을 가자지구에 한 대도 반입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구호품을 탈취한다며 5월 말부터 미국 단체 ‘가자인도주의재단(GHF)’으로 가자지구 구호품 배급 절차를 일원화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IPC는 7월부터 가자지구에 기근이 발생할 위험을 이미 경고했다. 옥스팜, 국경없는 의사회 등 100여 곳에 이르는 국제 인도주의 NGO는 8월13일 공동 성명을 내고 ‘가자지구에 대한 원조를 무기화하는 것을 중단하라’며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옥스팜 코리아 관계자는 〈시사IN〉에 “구호 물품이 가자지구로 전달이 되려면 이스라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구호단체들이 요르단이나 이집트를 통해 구호 물품을 반입하겠다고 사전 신청하면, 이스라엘이 이를 검토하고 승인 여부를 전달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정부는 ‘이번에는 승인할 수 없다’라거나, ‘식량은 정책상 전달이 불가하다’라는 등의 이유로 구호품 반입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구호 물품 나눠주는 척하다가 공격



서아시아 사회문화를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인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는 이에 대해 “말이 기근이지 사실상 사람들을 죽이는 행위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구 교수는 “이스라엘이 가자 주민을 대상으로 세 가지 차원에서 생지옥을 만들고 있다. 첫 번째는 구호 물자를 아예 풀지 않고, 두 번째는 구호 물자를 나눠주는 척하다가 그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는 행위를 했고, 마지막으로 하마스의 본거지라며 병원을 다 파괴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랍권을 대표하는 방송사 알자지라는 8월13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단체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이 현지에서 식량을 배급할 때 고의로 남성과 소년들을 총살해온 상황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국제집단학살학자협회(IAGS·International Association of Genocide Scholars)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자행하고 있는 행위가 유엔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서 명시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정의에 부합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의 해당 협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를 반성하며 만들어졌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IAGS의 결의안이 하마스의 거짓말과 부실한 조사에 기반하고 있다며 제노사이드의 피해자는 이스라엘이라고 반박했다.

문제는 전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하마스는 카타르와 이집트의 중재안에 따른 휴전을 수용했지만, 이스라엘은 거부한 상태다. 이스라엘은 예비군 6만명을 확충하며 가자지구 가자시티 점령 작전을 개시하려 하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휴전 가능성에 대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는 (정치적 실각 위기 등으로) 전쟁을 계속 이어나가야 할 동인이 있지만, 이스라엘 내부의 중도나 진보진영 사람들은 (하마스에 잡혀간 이스라엘) 인질 문제를 고려해서라도 빨리 휴전을 하자는 입장이라 팽팽하게 갈린 상황이다. 결국 휴전을 하느냐 마느냐는 사실 네타냐후 총리 개인의 의지와 결단에 달려 있기에 예측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이스라엘 극우 정치세력은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와, 또 다른 팔레스타인 주민 거주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모두를 동시 병합하겠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절멸한 뒤 팔레스타인 주민을 모두 제3국으로 이전시키고,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해 전체를 이스라엘 영토로 만들겠단 속셈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를 받아안아 8월31일 안보 내각 회의에서 서안지구 병합 방안을 논의했다는 〈로이터〉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인남식 교수는 “서안지구 합병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스라엘 극우 강경파는 이념적으로 경도되어 있기에 그렇게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이 더 많은 서안지구를 이스라엘 영토로 규정하겠다는 건 무한 투쟁과 테러를 반복하겠다는 건데 현실성이 떨어진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8월31일 〈워싱턴포스트〉의 단독 보도는 미국이 현 상황을 묵인할 뿐 아니라 이용하려 드는 게 아니냐는 의심에 기름을 부었다. 이 매체가 입수한 ‘그레이트 트러스트(GREAT Trust)’라는 제목의 가자지구 재건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가자지구에서 내보낸 후 미국이 최소 10년 동안 신탁통치 하면서 고급 휴양지와 첨단산업 도시로 개발하려 하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의 만행을 막으려면 국제적 압박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기연 교수는 “네타냐후 정권이 잔인한 행위를 지속하지 못하도록 국제적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 한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만큼 ‘가자지구에 대한 학살을 중단해야 한다’라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유엔 193개 회원국 가운데 148개국(바티칸 포함)이 팔레스타인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우방인 미국과 서방 주요국들, 한국과 일본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8월30일 ‘팔레스타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주최로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열린 ‘가자 점령 반대’ 집회에서 한 어린이가 참석해 있다. ©시사IN 이명익


다만 상황이 달라질 조짐도 보인다. 9월23일 열릴 유엔 총회에서 프랑스·영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등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아직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별도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9월 한 달 동안 한국이 유엔 안보리의 순회 의장국으로 활동하며, 이재명 대통령이 9월23일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에 나선다. 국내에 있는 국제 NGO 단체는 유엔 총회를 앞두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안토니우 유엔 사무총장은 말한다. “더 이상 변명은 그만. 행동할 때는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우리에게는 즉각적인 휴전, 모든 인질의 즉각적인 석방, 그리고 완전하고 제한 없는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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