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람들은 ‘다 그래’ 말하기 전에 [전국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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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9.07. 오전 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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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서울보다 큽니다. 전국 곳곳에서 뉴스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지역 언론인들이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소식을 들려드립니다. ‘전국 인사이드’에서 대한민국의 가장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8월8일 강원 속초시수산업협동조합에서 오징어 난전 상인과 관계자들이 불친절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서울에 방문했다가 택시를 타게 됐다. 서울 시내 숨은 맛집에 대해 한참 열변을 토하던 기사 아저씨는 문득 말을 멈추고 말했다. “이제 서울에 온 지 40년이 넘었는데, 아무리 연습해도 사투리는 숨겨지지가 않네.” 서울말로 희석된 영동 북부 사투리 억양에서 회한이 느껴졌다. 아저씨는 열여덟 살 무렵, 돈을 벌러 먼 서울땅에 왔다고 했다.

선거철이 되면 지역에서도 정치인 뒷이야기가 무성해진다.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지역사회, 빠트릴 수 없는 이야기는 ‘고향 세탁’이다. “저 사람, 원래 저기 옆 동네 사람이라던데.” 출신지를 찾는 말이 여러 차례 오간다.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사연으로 자신이 나고 자란 장소를 숨긴다. 그러나 모든 사연의 뒤에는 지역과 교차하는 낙인, 사회적 차별, 편견이 있다. 말 전하는 이들조차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낙인, 차별, 편견. 불평등을 만드는 요소는 대부분 ‘조용’하다. 그리고 ‘조용’히 사람의 삶을 잠식한다. “지역 사람들은 다 집 앞에 서울대병원 지어달라고 한다.” 편협한 시각으로 차별하는 이들의 발언 뒤 ‘조용히’ 아프다 떠난 지역 주민들 일상처럼. 이북 억양이 섞인, 자신의 말투를 버려야 서울에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을 아저씨처럼.

그러나 각별히 시끄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누구를 차별할지, 구별하고 분리하고자 하는 때가 그렇다. 범죄 기사에 국적을 붙여 비난하는 행태, 부정적인 사안에 젠더를 붙여 혐오하는 순간이 그때다. 혐오는 새롭게 생기지 않는다. 그저 정당화의 시기를 틈타 드러날 뿐이다. 혐오가 정당화될 때, 사투리도 구분과 낙인의 좌표가 된다.

“매년 반복되는 ‘바가지 요금’ 논란, 그리고 어김없이 따라붙는 ‘지역 혐오’ 발언 역시 지역 관광에 큰 타격을 입힌다.” 지난번 ‘전국 인사이드’에서 여름철 동해안의 관광산업에 대해 말하며 넣었던 문장이다(〈시사IN〉 제930호 ‘강원도의 여름, 크게 한 입 베어 물면’ 참조). 그러나 올여름에도 휴가철 ‘지역 혐오’는 다시 돌아왔다. 올해는 오징어를 판매하는, 속초 지역의 난전에서 손님을 불친절히 응대했다고 한다. ‘속초 오징어 난전 바가지’ 이 사안은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 그뿐이 아니다. 논란이 이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지역은 함께 호명됐다. 구분, 분리, 호명. 올여름 강원 지역이 본 것은 어떠한 권력의 작동이다.

권력의 정점은 호명되지 않는다



이 권력의 정점은 서울을 호명하지 않는 데 있다. 부정적인 구별의 대상으로 지역은 언제나 불려 나오지만, 논란과 사고, 부정적 행태에 ‘서울’이 통째로 호명되는 경우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올여름, 강원뿐 아니라 숱한 지역에서 지역명을 붙인 ‘불친절’과 ‘바가지’ 논란이 이어졌다. 강원 지역 이외에도, 올해 논란으로 불려 나온 지역이 대부분 역사적·사회적으로 차별받아왔다는 점은 더욱 시사적이다.

올해도 이 무거운 호명을 감당하게 된 지역 상인들은 불친절 재발 방지와 서비스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의대회도 개최했다. 내일의 강원을 더 기대할 이유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향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녕 혐오당한 이들이 스스로 더 검열하고, 숨죽이는 사회로 남고 싶은가. 이것은 지역을 매개로 드러난 구분하고, 분리하고, 평가하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단지 ‘지역’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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