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6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선이 치러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앞, 장동혁 신임 당대표가 선출되자 지지자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보수 우파 유튜버들이 큰 역할을 했다.” 한 60대 남성이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선거 조직도 없었는데 유튜브 아니었으면 벌써 끝났을 거다. 고성국TV, 이봉규TV, 전한길TV가 (장 후보를) 지원해준 덕분이다. 당원들이 이뤄낸 승리다.” 그때 양향자 최고위원이 나타나자 환호가 야유로 바뀌었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과 함께 당 지도부에 입성한 ‘찬탄파(윤석열 탄핵 찬성)’ 인사다. 양 최고위원이 웃으며 악수를 청하자 한 중장년 여성은 이를 외면한 채 소리쳤다. “이러니까 좌파 소리 듣지.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몇 번이고 배신 때려!”
장동혁 대표 당선은 ‘이변’이었다. 장동혁, 김문수 두 후보는 반탄파(윤석열 탄핵 반대)였기에 누가 되어도 국민의힘이 ‘윤 어게인’으로 퇴행할 것이란 비판이 거셌지만, 그럼에도 찬탄파를 포용하겠다고 한 김문수 후보가 더 유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장동혁 후보는 “내부 총질 세력과 함께 갈 수 없다”라며 선을 그었다. 무엇보다 두 달 전까지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김문수 후보와 인지도 면에서도 차이가 났다. 상대적으로 정치 경력이 짧은 장동혁 후보가 결선에 진출한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예상이 뒤집혔다. 이번 결선에서 장 대표가 얻은 최종 득표수는 22만301표, 김문수 후보(21만7935표)와 불과 2366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외연 확장보다 강경 노선이 먹힌 셈이다.
당심과 민심이 엇갈린 대목도 눈에 띈다. 국민 여론조사에선 김 후보가 우세했으나(김 60.18%, 장 39.82%) 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장 후보가 김 후보를 크게 앞섰다(장 18만 5401표, 김 16만5189표). 장동혁 대표는 8월26일 당선 수락 연설에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낸 승리”라고 표현했다. 낮은 인지도를 극복한 승리 요인으로 유튜브를 지목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 대선후보였던 김문수 후보와 싸워서,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승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 보수 유튜버들이 왜 장동혁이 되어야 하는지 거의 예외 없이 한목소리로 지지를 보내주셨다.” 이날 공개된 8월22일 본경선 결과에서도 장동혁 후보가 1위(36.85%)로 나타났다.
한때 친한계 핵심으로 불렸던 장동혁 대표는 지난해 12월4일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윤석열 탄핵 정국부터 극우적 발언을 쏟아내며 돌변했다. “이번 계엄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2월22일)”라고 발언하는가 하면 부정선거 음모론을 설파해온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를 적극 옹호했다. 7월31일엔 전씨 등이 주최한 ‘자유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나가 “윤 어게인 정신을 끌고 가겠다”라거나 “적절한 시점에 윤 전 대통령 면회를 가겠다”라고 밝히면서 아스팔트 우파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본선에 진출한 네 후보 가운데 ‘윤 어게인’ 세력과 가장 가까이 발맞춘 인물이 제1야당이자 보수정당의 당대표가 된 셈이다.
대선 패배의 원인을 줄곧 ‘내부 분열’로 규정해온 장 대표는 당대표 TV 토론에서 한동훈 전 대표보다 전한길씨를 공천하겠다고 공언했다. 친한계 한 인사는 선거 결과에 대해 다소 혼란스러워했다. “이성과 감정이 맞붙는 선거에서 감정이 더 크게 작용했다. 비상계엄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은 이성이고, 그럼에도 우리가 뽑은 대통령만 두 번씩 탄핵되어야 하느냐는 건 감정이다. 합리적 판단보다는 격정적인 투표를 한 것이다.” 윤석열의 계엄과 탄핵, 대선 패배까지 지지자들의 분노와 열패감이 선거 전략으로 자극되고 이용되었다는 지적이다. “그 감정에 불을 지른 게 극우 유튜버들이었다.”
이번 전당대회에선 윤석열을 옹호하고 한동훈계를 몰아칠수록 강성 당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최고위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계엄은 과천 선관위 상륙작전’이란 발언으로 당 대변인직에서 물러난 김민수 최고위원 후보가 최종 득표율 2위(18.96%)로 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반면 윤석열과 절연해야 한다고 했던 김근식 후보는 4위 김재원 후보와 근소한 차이(1367표)로 낙선했다. 결과적으로 최고위원 과반이 반탄파로 채워졌다(신동욱, 김민수, 김재원).
전당대회 기간 지지자들 간의 분열과 반목도 전에 없이 깊어졌다. 8월22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조경태 후보 지지자들과 장동혁 후보 지지자들이 서로 ‘배신자’라고 다그치다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장 후보 지지자들 가운데에는 ‘부정선거 사형’ ‘윤 어게인 리셋 코리아’ ‘가짜 대통령’ 등의 슬로건을 단 이들이 적지 않았다. 날 선 비방과 욕설이 난무했다. 조 후보 지지자인 50대 여성은 답답함을 호소했다. “국민의힘 당원이 된 지 20년이 넘었는데 이러다 보수가 궤멸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든다. 개혁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지만 도저히 가망없다고 느껴질 때는 탈당할 것이다.”
계엄과 탄핵 이후 보수 쇄신의 기회로 여겼던 전당대회를 거치고도, 오히려 내홍이 짙어지는 모양새다. 친한계 탈당 혹은 분당 가능성이 거론된다. 당장 장동혁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모든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겠다”라고 밝힌 데 이어 “단일 대오에 합류하지 못하고 당을 분열로 몰고 가는 이들은 결단이 필요하다”라고 압박했다. 사실상 한동훈 전 대표를 비롯한 찬탄파 세력을 향해 거취를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지명직 최고위원에 전한길 올까
앞서의 친한계 인사는 이에 대해 “당대표 본인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당을 떠나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극우 파시스트의 생각과 다를 게 없다”라고 비판했다. “비상계엄이 잘못되었다는 여론이 압도적인데, 윤 어게인을 외치면서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겠다는 것이 공당의 모습인가. 국민도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데 어떻게 대여 투쟁을 할 수 있나.” 한국갤럽이 지난 8월19~21일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도는 25%로 민주당(44%)보다 19%포인트 낮았다. 전당대회 기간 중 소폭 상승했지만 중도층으로만 보면 더불어민주당 49%, 국민의힘 15%로 집계됐다(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다만 지금으로선 친한계가 상황을 숨죽이고 지켜볼 뿐, 곧바로 탈당이나 분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고 조경태 후보를 지원하다가, 결선에서는 “최악을 피하게 해달라”며 사실상 김문수 후보로 투표해달라는 메시지를 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결과적으로 한동훈 지지자들의 표가 김문수 후보에게 더해지지 않았다고 본다. 독자 세력화할 만큼의 규모가 아니라는 평가다. “한 전 대표가 차기 대권주자로서 압도적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면 당 밖에서 세력화도 가능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당장 친한계 의원들이 지역구를 과감히 포기하고 따라 나올 수 있을까? 감정만 갖고 탈당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한 전 대표의 정치적 휴지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장 소장은 내다봤다.
일각에선 장동혁 대표의 ‘강경 노선’ 혹은 ‘찬탄파 배제’가 하나의 선거 전략이었을 뿐, 당대표가 된 이상 통합 행보를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의견도 있다. 한 친윤계 초선의원은 “내가 지켜본 장동혁은 그렇게 강성이 아니다. 장동혁의 선거 전략이 지금 당원들의 뜻과 일치한 면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 노선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장 후보가 당대표로 선출되기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이다. 친한계를 향해 ‘결단하라’는 장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당내 의견을 청취해서 결정하지, 독단적으로 결정하진 않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당대표로서 나오는 메시지는 비교적 ‘톤다운’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기반으로 삼은 윤 어게인 세력으로부터 ‘청구서’가 당분간 쌓일 예정이다. 8월27일 국민의힘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민수 최고위원은 한·미 정상회담을 겨냥해 “외교 무대에서 윤석열 대통령처럼 당당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9월1일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석방하라”는 주장까지 내놨다. 국민의힘에선 “개인 발언”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당내에 끼치는 부담이 적지 않다. 전한길씨를 지명직 최고위원 등 당직에 임명할지도 관심사다. 전씨는 8월27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공천 같은 것 안 받지만 설령 공천받는다 해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대구시장으로 나온다면 무조건 양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 대표가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 선거 때보다 절제된 행보를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한길씨에 대해 “외곽 의병(8월30일 〈조선일보〉 인터뷰)”이라며 지도부 합류를 일축한 가운데, 정책위의장과 사무총장에 김도읍, 정희용 의원을 임명했다. 두 의원 모두 계파색이 옅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내란 상설특검법에 찬성했다.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친윤 세력과 극우 유튜버들이 연합해서 내보낸 ‘바지 사장’에 가깝다는 평가 역시 존재한다. 두 개의 축을 기반으로 당대표직을 수행하는 조건에서 어떤 식으로든 극우 세력에게 지분을 줄 수밖에 없으리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강성 발언으로 당원들의 지지를 얻은 장동혁 체제는, 동시에 취약한 첫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