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에 저장된 오래된 동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2021년 12월26일 오후 3시 국민의힘 당사에서 촬영한 7분41초짜리 영상이었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카메라의 초점은 한 사람에게 맞춰졌다. 허위 이력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히겠다며 기자들을 불러 모은 김건희씨였다.
영상 촬영 당시엔 김건희씨가 어떤 말을, 어떤 표정으로 했는지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기껏 취재하러 가서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가 영상에 담겨 있다. 화면은 마이크 앞에 선 김건희씨의 전신에서 상반신으로 점점 당겨지다가, 5분가량 지나 손가락으로 향한다. 휴대전화 화면 밖으로 보이는 손가락이 계속 신경 쓰였다. 그는 낮은 음성으로 조심스레 입장문을 읽으면서, 검지손가락을 엄지손가락에 대고 튕기고 있었다. 떨리고 긴장해서일까? 준비해온 글만 빨리 읽고 얼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걸까? 짐작만 할 뿐, 질문도 받지 않고 국민의힘 당사를 떠난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2025년 8월6일 특검 소환조사에 참석하기 위해 김건희씨가 기자들 앞에 다시 섰다. 또다시 그를 휴대전화 화면에 담았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모습도, 주목할 만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저 같은 사람’이라는 짧은 메시지만 냈다. 그러나 3년7개월 전 손가락을 튕기며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던 그때, 그가 뒤로는 그 손으로 누구에게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등이 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당시 김건희씨가 정치 브로커 또는 무속인 등과 나눈 전화와 문자 대화,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 대화의 결과 모두 특검의 핵심 수사 대상이다.
김건희씨는 특검 조사 과정에서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진술을 거부했다. 김씨는 ‘자신은 그럴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할 때만 입을 열었다.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았고 영향력이 없었다면, 그 전에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고 조용한 내조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의지가 실제로 있었다면, 그가 지금 검사와 수사관 앞에서 그런 주장을 해야 할 이유도 없을 터이다.